HOME                로그인

여는 글
“밥은 먹고 다니냐?”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어린 시절, 동네에 친척 아저씨가 한 분 계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아저씨는 하는 일 없이 동네를 산책하곤 하셨는데, 다니다가 자주 마주쳤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리면 아저씨는 언제나 “그래, 밥 묵었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만나든 저녁에 만나든, 식사 때가 아닐 때에도 인사말은 항상 “밥 묵었나?”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이상하고 우습기도 했지요. 점심은 먹었다고 해야 할지, 저녁은 아직 안 먹었다고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밥 묵었나?”라는 인사말에는 참으로 많은 안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한끼 한끼 밥 잘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매끼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누구와 먹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먹는지 생각해 봅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도 대화 없이 모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후다닥 먹고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식구조차 곁에 없어 혼자 외로이 밥을 먹기도 하고요. 몸이 아파 입맛이 없지만 억지로 먹을 때도 있고,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심해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 때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그야말로 밥 한끼 못 먹는 사람도 있고, 바빠서 대충 한끼를 때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니 “밥 묵었나?”라는 인사말 속에는 ‘그래, 요즘 힘든 일은 없니? 같이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있니? 건강은 괜찮니? 행복하게 지내니?’ 이런 마음이 다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일본에서 흉기 난동 사건으로 세 명이 숨지고 열여덟 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이 등굣길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이라 일본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범인은 50대로 범행 후 자살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10대 때부터 이른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으며 80대의 삼촌 내외와 살고 있지만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홀로 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범인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밥 같이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을 피울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듭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형사 박두만은 증거불충분으로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를 놓아줘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한 마디 합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물론 은둔형 외톨이라고, 홀로 외로이 자란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지요. 친한 친구가 있다고 다 잘사는 것도 아닐 테고요. 이렇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변에 힘들어하거나 외로워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관심을 필요로 할 때 우리가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분명 달라지겠지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처럼 예사롭고 일상적인 일을 뜻하지요. 하지만 늘 하는 일일수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대충 해치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이 일상의 습관처럼 별일 아닐 수 있지만 그런 소소한 일에 좀 더 신중히 마음을 쓰고 정성껏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한다면 나도, 내 주변의 세상도 좀 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무슨 거창한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가장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같이 밥 먹는 일 같은 데서부터 말입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먼저 이야기를 건네 봅시다. “밥은 먹었니? 같이 밥 먹자.”

 

“호소하는 이를 물리치지 말고, 가난한 이에게서 네 얼굴을 돌리지 마라.”(집회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