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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사이비(1)”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얼마 전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조깅’의 ‘조’자가 ‘아침 조’냐 ‘달릴 조’냐 하는 꽤 오래된 농담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조깅(jogging)’이 영어 단어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곧이어 호탕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문득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사이비”, 일상에서는 주로 ‘싸이비’라는 강한 발음으로 표현되는 이 단어. 당연히 영어 철자로 이뤄진 외국어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닮을 사’, ‘말 이을 이’, ‘아닐 비’자를 쓰는 한자어임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 의미를 말하자면 ‘비슷하기는 하지만 가짜인 것’ 정도가 됩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오랜 시간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속아왔다는 생각에 ‘참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진 단어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발음에서 오는 독특함이 그 의미에까지 잘 어우러진 흥미로운 단어 ‘사이비’.

흥미로운 단어인 만큼, 이에 대한 나름의 단상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기주 씨는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이비(似而非). 비슷하기는 하지만 가짜인 것을 의미한다. 물건으로 치면 정교한 모조품이다. 사이비는 진짜와 비슷하다. 그래서 때로는 진짜와 구별하기 어렵고 때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이비의 생명은 짧다.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진실한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그 실체가 탄로 나고 만다. 물건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감정도 그렇다.

 

이처럼 ‘사이비’는 비단 종교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생각해볼수록 오히려 더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는 것은 요즘 우리를 둘러싼 세태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와 가짜가 공존하는 세상. 점점 더 정교해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는 가짜. 심지어 진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가짜. 하지만 언젠가는 그 정체가 탄로 날 가짜.

 이 ‘사이비’란 단어를 제목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아직은 생소했던 ‘좀비물’로 큰 성공을 거둔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은 원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으로 꼬집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이었습니다. 영화 “사이비(2013)”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돼지의 왕(2011)”, 군대를 배경으로 한 “창(2012)”에 이어 ‘한국형 이단’으로 인한 폐해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 풍자에 능한 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사이비 종교로 인한 폐단에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몰예정지역인 마을에 새로운 교회가 생기고, 교회의 장로가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을 노리며 접근합니다. 그는 암울한 현실의 상황을 뒤집을 만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파고들며, 점점 더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그를 돕던 목사, 그들의 비밀을 가장 먼저 알게 됐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이미 악인으로 낙인찍힌 한 남자, 장로의 꾐에 서서히 넘어가는 그 남자의 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이 첨예하게 그려집니다. 그 가운데 선과 악, 진리와 거짓, 믿음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점차 상대적으로 변질되며 그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을 접한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이 던져집니다.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진짜’입니까?”

 그밖에도 사이비 종교를 다룬 좋은 영화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미스트(2007)”와 한국 공포영화의 숨겨진 수작 “불신지옥(2009)”, 감독님께 직접 연락해서 힘들게 구해봤던 독립영화 “선지자의 밤(2014)”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 작품 모두 현실을 부정한 채 왜곡되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세뇌된 집단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에 대해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각 작품마다 그 장르적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통해 우리 각자가 가진 믿음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이비’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 연재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달의 추천 영화 : 미스트(2007), 불신지옥(2009), 사이비(2013), 선지자의 밤(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