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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볼리비아 선교 25주년을 앞두고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내년이면 저희 대구대교구가 볼리비아 선교를 시작한 지 25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선교 은경축을 맞이하며 무언가 역사를 되짚어보고 기념할 필요가 있음에도, 너무나 쉴새 없이 돌아가는 세 본당의 일정으로 아직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은경축도 그냥 지나가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4년 전 선교 20주년을 맞으면서도 저희 볼리비아 선교 사제들끼리 거창한 천주교대구대교구 볼리비아 선교사 책을 출간하기는 어려우니, 비사( 史)책이라도 적어 놓자고 농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어의 다름으로 인해 겪었던 비사 시리즈, 사건·사고 시리즈, 풍토병 시리즈 등 각 분야별로 책을 엮으면 모든 선교사가 한 보따리의 이야기책을 낼 수 있을거라 했습니다.

5년을 조금 넘긴 저 개인의 볼리비아 선교 비사( 史)도 책으로 내면 이런 저런 많은 꼭지들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언어공부를 할 때 견공(犬公)에게 물렸던 일부터 산골아이들을 데리고 칠레 바다까지 3박 4일 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며 겪었던 일, A형 간염으로 죽다 살아난 일 등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제게 가장 아팠고 힘들었으며 동시에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많은 감정이 교차한 일은 바로 교통사고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안정되어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사고 트라우마로 선교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할 만큼 큰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고 힘들었던 그 사건을 이제야 담담하게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때는 2016년 부활절 이후 첫 토요일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첫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의 추억과 신자들의 도움과 정성으로 마음이 한껏 들떠 있기도 했고, 얼마 되지 않아 맡게 될 첫 주임신부라는 자리 앞에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본당이 속한 볼리비아 뉴 플로데 차베스 교구에서는 부활이 끝난 후에는 늘 ‘파스카 후베닐’이라고 불리는 교구 주최 청소년대회를 합니다. 3년 전 그날도 항상 그래왔듯 본당별 장기자랑 시간 때 보여줄 공연에 심혈을 기울여 12명의 청소년 대표와 일주일 동안 준비하였습니다. 재능이 많은 청소년 대표단으로 꾸려졌던 그 해는 어느 해보다 멋진 공연을 준비했고, 1등을 하고야 말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본당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이웃 본당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작은 픽업 트럭에 운전사로서 보좌신부인 제가 차를 몰고, 차 안에 5명, 그리고 짐칸에 6명의 학생을 태우고, 새벽부터 비포장길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저희 산골짜기 마을들을 지나 평지로 내려와 아미쉬들이 운영하는 대농장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어느 대농장 앞에 곡식을 실은 덤프트럭 5대가 줄지어 있어 그들이 농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멈춰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2대를 보내고 난 후에 어떤 친절한 덤프트럭 기사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보시더니 먼저 지나가라며 길을 터주셨고, 저희는 터주신 길로 저희 차로를 따라 차의 머리를 틈 사이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때 맨 끝에 줄지어 서 있던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우리 차로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추월하기 위해 차선을 이탈했지만 당연히 저희를 보고 멈춰 설 거라 생각해, 그 자리에서 제동을 하며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덤프트럭은 마치 저희가 그 자리에 없다는 듯이 속도를 내며 달려와 저희 작은 트럭을 덮쳐 버렸습니다. 차가 전파되는 큰 사고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제 다리는 부러졌고, 코뼈도 충격을 받아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습니다. 짐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고, 차 안에 탄 아이들도 서로 부딪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저를 비롯한 한 아이의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또 머리에 충격을 받은 아이, 등에 유리 파편이 들어간 아이, 그리고 허리 압박 골절이 된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한데 사고 순간 다친 제 다리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오직 하나 ‘주님, 제 다리를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주소서.’ 였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깨금발(앙감질)로 뛰며, 피 흘리며 그 말도 안 되는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다가 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덤프트럭 운전자는 완전 만취(漫醉)상태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운전자에게 분노했고,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순간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휴대폰을 꺼내 그 운전사에게 소리 지르며 질문했습니다.

“Esta bien borracho”(술 취하셨죠?)

그가 대답했습니다. “Si si estoy borracho”(네, 지금 술취했습니다.)

그때는 그 짧은 녹음이 그렇게 큰 역할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무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로 후송되었고 아이들과 저는 각자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다음호에 계속)

 

김동진 신부 : 메일 padregemelokim@gmail.com

카카오톡 아이디 f-jemello@hanmail.net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그리고 건강한 지붕과 벽〉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