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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사무직원회 베트남성지순례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글 김인구 토마 | 동천성당 사무장

 

2019년 4월 29일(월)부터 5월 2일(목)까지 대구대교구 사무직원회(회장 : 박경호 토마스, 담당 : 노광수 그레고리오 신부) 성지순례로 베트남을 다녀왔다. 요즘은 경제교류나 여행, 국제결혼 등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베트남하면 월남전, 베트콩, 보트피플, 학교에서 받던 반공교육이 떠오르는 전부였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동천성당에도 여행이나 사업을 위해 오가는 분들이 많지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나라에 성지순례라니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 걱정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니 약간의 귀찮음만이 남았다.

  

4월 29일(월) 첫째 날

오전 7시 20분 대구공항을 출발해서 오전 10시 50분(현지시각)에 다낭에 도착했다. 아직 봄 날씨인 대구와는 달리 다낭은 벌써 30도가 넘었다. 3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다낭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니 한국에 있는 다른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식사 후 40분쯤 달려 바나산 국립공원에 도착해 바나힐 투어를 했다. 그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귀족들의 휴양지였던 곳을 새롭게 개발한 곳으로, 케이블카 이동만 5km가 넘고 산 정상에 베트남 전통 사찰부터 중세 유럽풍 건물들과 유원지 시설까지 다 모여 있는 종합 리조트 단지였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았지만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갑자기 ‘그 옛날 프랑스 귀족들은 직접 짐을 들고 자기 발로 걸어서 올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40분가량 이동하여 ‘후에’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후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그냥 잠들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과 달리 주변은 조용한 시골마을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몇몇이 모여 근처에서 첫날의 회포를 간단히 풀고 들어와 침대에 누웠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4월 30일(화) 둘째 날

오늘 일정은 찌부성당, 순교무덤탑, 라방 성모발현지, 다낭대성당 등이다. 가는 길에 가이드를 맡은 김민우(바오로) 형제가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며 이들의 문화와 관습 등을 존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4월 30일은 베트남의 남부해방기념일이다. 오랜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남북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통일되었다.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함락되고 대통령이 항복한 날인 것이다. 국경일이기에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가득하고 집집마다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빠짐없이 게양되어 있다. 찌부성당 옆에 있는 순교무덤탑에 들렀다. 1호차 가이드를 맡은 조혁진(멜키올) 형제님이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나라보다 250여 년이나 빨리 복음이 전해졌고 당시 베트남은 유교국가였던 만큼 박해도 많았으며, 순교자 중 117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여기 순교무덤탑에는 박해 중 발생한 600여 명의 순교자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데, 400명이 불에 타죽고 200명이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한다. 여기서 차를 타고 15분쯤 가면 라방 성모발현성지에 다다른다.

 

  

    

박해를 피해 작은 마을 라방의 보리수나무 숲 속에 숨어 생활하던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드리던 어느 날 밤, 성모님이 전통의상을 입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발현하셔서 “앞으로 나는 누구든지 이곳에서 나에게 청하는 모든 이의 기도를 들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라방 성모님은 치유와 간청, 간구의 성모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곳의 첫 인상은 엄청 넓다는 것이다. 1928년 성모님께 봉헌된 라방대성당은 전쟁 중 부서지고 종탑부분만 남아있다. 재건축 중인 대성당의 외관은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보리수 아래 발현하신 성모님을 재현해 놓은 곳에서는 학생들이 성모님께 바치는 춤을 연습 중이었는데 다른 어떤 공연보다도 아름답게 보였다. 1억 명에 이르는 인구 중 가톨릭 신자가 1천만 명에 가깝다고 하는데 그런 숫자는 부럽지 않다. 신자 수나 봉헌금의 많고 적음이 신앙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가톨릭 신자인 것을 밝히면 공산당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누구나 신자임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라방을 뒤로 하고 다낭으로 향했다. 다낭대성당에 도착해서 교구사무직원회 담당 노광수(그레고리오, 교구 사무처장)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성당 외벽이 분홍색이어서 핑크성당으로 불린다는데 관광객들의 핫 포토존이라고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상당수가 한국인으로 보였다. 다낭대성당을 떠나 ‘바다의 별 성모님’을 순례했다.

저녁을 먹은 후 다나쇼를 구경했다. 베트남의 신화부터 역사 전통춤 등을 주제로 한 공연이었다. 이런 공연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처음에는 편하게 보지 못했지만 공연자들의 열정에 이끌려 끝날 때는 아쉬웠다. 최선을 다한 후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에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5월 1일(수) 셋째 날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먹고 호이안으로 이동했다. 1615년 1월 18일 일본의 에도막부의 박해를 피해 신부님 세 분이 무역항이던 호이안에 도착한 것을 베트남 가톨릭의 출발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 2015년이 400주년이었다고 한다. 호이안대성당을 둘러보는 동안 갑자기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떠올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약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듯한 아주 매력적인 곳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많은 가게를 하나하나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둘러보던 중에 화보를 찍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오래된 건물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잡고 있는 모델의 표정이 기쁨과 자신감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한 발 떨어져 보고 있던 나는 그 위에 드리워진 금성홍기와 무심히 늘어진 꽃가지들을 포함한 전체적인 장면을 보면서 베트남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 후 또 한 곳의 성모발현성지인 짜끼우로 향했다. 120년 전 왕이 보낸 군대를 피해 짜끼우성당에 몰려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얀 옷을 입고 성당 지붕에 발현하여 총탄과 대포를 막아 군대를 물리쳤다고 한다. 짜끼우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나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례를 하기 전부터 나에게 떠올랐던 상처받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렇게 마음속에 붙어있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듯 가볍고도 허전한 기분으로 짜끼우성당을 떠났다. 왕이 보낸 군대가 주둔했던 언덕에 세워진 성모당에 오르니 가족으로 보이는 현지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 중에 아베마리아 구절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걸로 보아 묵주기도 중인 듯했다.

짜끼우를 떠나 베트남에 여행 온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한다는 바구니 배를 탔다. 처음에는 좀 시시했는데 강폭이 넓은 곳에서 배들을 서로 엮어서 고정한 후 보여준 모습에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얼마나 신명나게 노는지! 우리나라 노래를 부르는데 발음도 좋고 흥이 절로 났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서 이번 성지순례 동안 각자가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5월 2일(목) 넷째 날

공항에 가기 전 아주 소소한 것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선물을 샀다. 그리고 4일간 아주 열심히 가이드해 준 조혁진(멜키올), 윤종배(우르바노), 김민우(바오로) 형제님과 현지인 가이드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다. 직접 와보지 않았다면 나에게 베트남은 여전히 영화 ‘플래툰(1986)’이나 ‘지옥의 묵시록(1979)’ 같은 전쟁영화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부디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시는 곳은 우리들이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는 곳인가 보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성모님의 발현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마음일까?

해외성지순례를 허락해 주신 교구장님과 흔쾌히 보내주신 정인용(바르톨로메오) 본당 주임신부님께 감사드리며 사무직원회 회장단에게도 감사드린다. 내 인생에 큰 선물 하나를 받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기도 하나를 되새긴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