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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글 황선영 안나 | 고성성당

 

항상 묵주를 손에 들고 계시는 91세의 베드로 어르신으로부터 몇 달 만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간의 안부를 여쭤보니 어르신께서는 힘없고 떨리는 목소리로 어느 작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실을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후 자꾸 어르신 생각이 나서 휴무일에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저의 방문에 “마치 성모님이 오신 것 같다.”며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홀로 사시면서 하루에 두 번씩 미사참례를 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성당 가시는 길에 넘어져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부정맥으로 심장박동기 시술을 한 후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협소한 시설에 보호자가 없다보니 외출도 퇴원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다리는 점점 굳어 갔고 식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해 몸무게도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했습니다. “평생 예수님만 믿고 성당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는데 미사참례를 못하니 내 영혼이 죽어가는 것 같고 성체를 모시지 못하니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 같다.”며 울먹이셨습니다. 그 말씀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마침 바로 옆 건물이 성당이라 “어르신, 지금 저와 같이 성당에 가보실래요?” 하니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지면서 서둘러 옷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남루한 체육복 한 벌이 전부였습니다. 어르신 연세가 많다 보니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실 것이라 생각해서였는지 이전 성당 관계자들께서 어르신이 살던 집과 옷을 모두 정리한 상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허름한 체육복을 입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5분 거리의 성당을 거의 40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성모상 앞에 가시자마자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성체조배 때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어르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어르신 생각에 자꾸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쩐지 주님께서 어르신을 도와주라는 계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저의 신앙생활 또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미사참례는 하면서도 성당 문을 나서면 세상 걱정으로 가득하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는 제대로 하지 않고 성경지식을 쌓겠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신앙특강을 듣는데도 신심이 생기지 않는다며 주님께 투정만 부린 저에게 주님께서는 어르신을 통해 성령을 보내신 것만 같았습니다. 미사 강론 중에 “사랑을 실천해야만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날 이후 휴무일이면 천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 요양원, 양로원을 알아보러 다니며 어르신과 함께 입소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거의 두 달 만에 가장 조건이 맞는 동명성당 근처 성가양로원으로 가시기로 결정한 후 저희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단장님과 단원들에게도 수시로 보고하며 어르신께 필요한 옷가지, 속옷, 세면도구를 십시일반으로 모아 지난해 12월 마침내 입소를 하셨습니다. 입소하시는 날, 어르신을 혼자 두고 돌아오는 저는 마음과 발걸음이 무거워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어르신의 평생 삶을 전해 들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은 1964년에 세례를 받고 결혼을 했지만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했고 친인척도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 받아들이며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가입한 어르신은 부인과 함께 평생 주님께 의지하며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따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특히 시각장애인들을 보살피며 선교했다고 합니다. 또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뒤로는 20년 넘도록 신자들 교육을 하며 기도생활과 봉사로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70세 무렵, 어르신께서는 지인에게 보증을 서 주신 후 집과 전 재산을 날리고 한순간에 거리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원망하기 보다는 욥기의 성경말씀처럼 끝까지 주님만 믿고 주님의 뜻이라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은 잠시 빌려 쓰는 것이고 내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사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의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시신기증 서약까지 하셨답니다.

현재 어르신은 성가양로원에서 그토록 원하던 미사참례도 하시고 좋은 공기 속에서 운동도 하시고 또 식사도 잘 드셔서 얼마 전부터는 지팡이 없이 걸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셨습니다. 하루 종일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울 만도 한데 종일 성무일도, 성경읽기, 기도 등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평신도로서 마치 수도자처럼 살아가시는 베드로 어르신! 너무나 겸손하시기까지 하셔서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길을 일깨워주신 어르신의 남은 삶도 주님 안에서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