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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 루카 10,1-12.17-2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0장 1-12.17-2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어떻게 보내십니까?(1절)

- 2절에서 6절까지 함께 낭독합시다.

-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고을에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8-9절)

-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10-11절)

-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드린 말씀은 무엇입니까?(17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었던 권한은 무엇입니까?(1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까?(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9,1-6)하신 데 이어 다시 일흔두 제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파견하신 이야기가 선포됩니다. 일흔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는 루카복음서만이 보도하는 특별한 것으로, 열두 제자의 파견 때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앞서 보낸다’(1절)는 것과 ‘수확할 일꾼’(2절)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날’(12절)과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20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재림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루카는 이들이 ‘다른’ 이들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열두 제자와 ‘다른 이 제자들’의 파견은 예수님에 ‘앞선’ 것으로, 그리스 말을 직역하면 예수님의 ‘얼굴에 앞선’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파견에 있어서 예수님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며, 제자들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얼굴)의 모습을 보이고 전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음을 강조해줍니다. 그리고 이 파견은 열두 제자와는 ‘다른’ 이의 파견으로 열두 제자와는 ‘다른’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그들과 동일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알고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더 성실히 일을 한다면 그는 좋은 일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꾼의 숫자가 역부족인 것을 깨닫고 더 많은 일꾼을 청하기 위해서 더욱 겸손한 몸가짐을 한다면 그는 현명한 일꾼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겸손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안내합니다.

제자들의 마음가짐은 이리떼 앞에 선 양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양은 이리의 먹이입니다. 세상에 먹이처럼 파견되는 제자들은 이리 앞에 선 양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먹히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마태 5,13-16)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가치 없이 세상에 먹힐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오가 첨언하듯이 세상 속 제자들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함을 기억합시다.(마태 10,16)

파견되는 제자들은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런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은 파견하시는 예수님 외에 다른 것에게 의지하지 않게 합니다. 또한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은 시간 낭비를 막으며 사명에만 더욱 집중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소유로 파견되는 것은 품삯과 음식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들이 제자들을 도울 것입니다. 또한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이리 저리 옮겨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변질시킵니다. 열심히 일한 제자들은 자존심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서는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 자존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포기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기 위한 경고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길에 나가” 당당하게 그리해야 합니다.

파견되는 제자들이 전해야하는 메시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씀은 모두 완료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곧 현재성이 강조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올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모든 이들이 그곳에 참여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파견되는 제자들은 힘을 더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까지 복종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보고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곧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외형적인 사건보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정작 기뻐해야 하는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기쁨을 추구하다가 보다 본질적인 것은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부활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시어 강복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예루살렘(내가 어려움을 겪는 자리 또는 일상의 자리)에서 만나게 될 이웃 안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4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 루카 10,25-37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0장 25-37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떤 질문을 합니까? (25절)

-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습니까?(26-27절)

- 율법교사는 무슨 이유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까?(29절)

-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십니까?(30-35절)

- 사제와 레위인은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31-32절)

-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행동은 어떠합니까?(33-35절)

- 36절과 37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사용된 ‘시험하다’라는 그리스 단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을 때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4,12)고 하실 때 사용한 말과 동일합니다. 루카복음은 이 율법학자의 시험을 하느님에 대한 시험과 동일시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그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영생(永生)의 해법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느님 사랑이 아니라 이웃 사랑에서 발생했고 이웃의 범위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범위를 묻는 그에게 ‘가엾은 이들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가르침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그의 이동 경로를 보아 유다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그를 도와준 사람은 그가 싫어하고 무시하며 천대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거룩한 하느님을 모시며 고귀한 주님의 법을 산다는 사제와 레위인¹?은 그를 외면하며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초주검, 곧 부정한 것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레위 11장; 21,11; 22,4-6 참조)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그에게 가엾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그를 도와주게 됩니다. 자신을 싫어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이를 도와줍니다. 가엾은 마음 때문에 … 우리는 어떠합니까? 법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죄스런 인간을 속량하기 위해 죄스런 세상에 오시어 하느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을 시험하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입니다. 우리도 가끔 이 율법교사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 하느님을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율법학자를 참고 가르치시며 이웃이 되어주라고 하십니다. 이웃은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냥 원래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어 줍시다. 그리고 이웃이 되어주는 삶은 누군가에서 자비를 베푸는 삶(37절)임을 기억합시다. 영원한 생명은 아는 것을 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며 한 주간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1) 사제와 레위인은 유다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레위인들은 사제를 도와 성전에서 제사 때 사용하는 제물을 준비하고 성전 경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식 때 성가대의 역할을 했으며 십일조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자비의 손길을 주고받은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 : 루카 10,38-42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0장 38-42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등장인물은 누구입니까?

- 마리아는 어떤 자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39절)

- 마르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40절)

-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41-4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선포됩니다. 이 이야기는 마르타로 대변되는 활동(活動)생활과 마리아로 대변되는 관상(觀相)생활을 비교하는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의 이야기 전개 구도라는 좀 더 큰 틀을 따라 읽게 되면 얻게 될 의미가 좀 더 풍부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주일의 복음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와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루카복음은 두 이야기를 연속시키며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신 이웃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임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또한 지난 주일 복음의 인물들과는 다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주축이었던 지난주 복음 속 인물들, 곧 율법교사와 사제 그리고 레위와는 달리 소외되었던 여성들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셔 들인 사람이 마르타라는 여자임을 부각시키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의 두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남성만 등장했던 지난 주일 복음과 비교하여 여성성이 아주 많이 부각됩니다. 남성 우위의 시대에 천대 받던 여성이 자기 집에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당신을 맞아들인 그 집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여성을 당신 말씀을 듣는 가장 좋은 자리인 당신 발치에 제자처럼 두십니다. 여성들이 말씀을 배우는 일이 허락되지 않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런 파격적인 행동을 하십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소외되었던 존재인 여성에게도 모범적인 제자의 모습을 허락하시고 그 자리에로 초대하십니다.

오늘날 말씀을 듣고 배우는 자리에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많습니다. 필요한 것과 좋은 몫을 여성들이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카복음은 여성이 소외되었던 시대에 여성을 여자 사람으로 구별하기보다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제자처럼 받아들이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남성·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임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한 좋은 몫은 무엇인지 바르게 생각하고 선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우선 말씀을 듣고 배우며 간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말씀을 좀 더 중요한 것으로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 각자는 무슨 일로 분주합니까? 잠시 멈추어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 봅시다. 그리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3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 루카 11,1-1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1장 1-1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은 무엇입니까?(1절)

-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십니까? (2-4절)

- 예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십니까?(5-7절)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8-10절)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해주시는 분이십니까?(11-1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루카복음은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 제자의 제자성(弟子性)을 좀 더 완곡하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먼저 기도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이 제자는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자신이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가 ‘스승과의 대화’라고 생각했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미쳐 알아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루카복음은 그를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이 제자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들의 지난 삶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었고, 나눈 대화가 기도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제자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2-4절)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벗의 비유를 통해 끊임없이 간청하라는 가르침을 주시고(5-8절) 마지막으로 청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가르침을 통해 성령을 주실 것임을 알려주십니다.(9-13절)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이 두 가지인 듯 보입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과 청하는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청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심을, 우리의 청을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해주고자 하십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통해 청하는 이들이 받게 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하는 이들이 받게 될 것에 대해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청하는 이가 받게 될 것은 그가 청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라 ‘성령(聖靈)’이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그가 청하고 찾고 두드린 것에 대한 더 합당하고 좋은 응답을 얻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청하는 바로 그것에만 집중하여 우리가 받은 그 응답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기도 안에 담긴 말마디를 곱씹으며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시다. 내가 청하는 그것보다 더 좋고 마땅한 그것, 어쩌면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우리가 얻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해서 청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저 세상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심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어떠한 기도를 드립니까?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감사한 일들을 나누어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7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