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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극한성소”(2)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오늘날 누군가에게 ‘요즘 어떠십니까?’ 하고 안부를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참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 호 저는 “극한직업”을 올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를 바로 그 제목에서부터 모두의 삶을 파고드는 ‘공감대’였다는 성찰과 함께 글을 마쳤습니다. 곧 ‘우리 모두가 참으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감대 안에서 영화 속 코믹한 이야기가 단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고 애처롭기까지 하더니 영화 내내 패색이 짙던 그들이 끝내 일궈낸 역전승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쾌감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선 우리는 다시금 현실을 마주합니다. 잠깐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내 삶의 ‘극한직업’으로 금세 돌아옵니다. 물론 ‘저는 제가 하는 이 일이 천직이고,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어릴 적 꿈이나 희망했던 일보다는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을 하나씩 안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상대적으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사회와 공동체에 공헌하는 바가 있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죠. 사실 진정 우리의 삶을 녹록지 않게 만드는 것은 내가 가진 ‘직업’ 자체보다는 날로 변화무쌍하게 복잡다단해가는 이 사회의 ‘난제’들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말 해야 할 말이 많지만 주제를 크게 벗어날까 싶어 각자의 판단에 맡겨드립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여전히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지만 더 이상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부족한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일에 일생을 다 바쳐서 ‘장인’이 되는 시대를 지나 강력범죄를 막기 위해 닭튀김을 연마해야 했던 영화 속 형사들처럼 이 무한경쟁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더 깊이 고민하고 적절히 조합해내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내 직업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그 이상의 것을 요청받게 되니 모든 직업이 극한직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찰의 대상을 ‘사제성소’라는 측면으로만 좁혀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호에서 함께 감상할 것을 제안했던 우리 학사님들의 성소주일 영상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이 그저 예쁘게 느껴지셨을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거룩한 수단을 입고 요즘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 무언가 어색해 눈살을 찌푸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셨던 그 모습이 바로 ‘극한직업-사제성소편’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들과 함께 신학생 시절을 보냈던 선배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들이 눈에 선하기에 ‘그래, 여전히 참 녹록지 않구나. 고생들 많다.’ 하는 대견함과 함께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21세기에 신학을 해보겠다고 나선 이 무모한 사람들. 모두가 제 것을 찾는 가운데 남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보겠노라 나선 이 어리석은 사람들. 하지만 이 시대는 오히려 그들에게 사제성소 그 이상의 것을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제’라는 직무가 갖는 특별한 이미지와 역할은 교회 내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특별함이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하고 손쉽게, 또 왜곡되어 소비되면서 우리는 그 본질에서부터 다시 질문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각자의 자리에서 영적인 ‘장인’이 되어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면, 그리고 특별한 노력 없이도 모두가 사제를 사제로서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었다면, 혹은 그저 무관심했다면 이제는 ‘도대체 사제는 무엇하는 사람들이며 천주교는 어떤 종교인가?’라는 그들의 질문이 하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그들의 소통방식을 배워야만 했고 그 자리를 일찍이 선점해버린 각종 이단들과 타종교들 사이에서 단순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제는 모르는 것도, 못 먹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어야 한다.’는 옛 선배들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극복해 내야 할 위기이자 시대적 요청이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도전에 너무도 충실하게 또 아름답게 응답하고 있는 후배님들의 모습에 저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문제가 어디 사제 성소뿐이겠습니까. 참으로 녹록지 않은 오늘, 우리 모두가 ‘극한직업’을 하나씩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극한성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후배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