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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원 순례기 ③
은총의 빛 가운데 머물다


글 김윤자 안젤라 | 선산성당

 

 오늘의 수도원 순례는 부산 지역으로 정하고 첫 순례지인 예수성심전교수녀회(한국관구)를 향해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선산을 출발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자리한 예수성심전교수녀회는 25년 전 가끔씩 들렀던 곳이었는데 찾아가는 길이 얼마나 꼬불꼬불하던지…. 그렇게 수녀원을 찾아 들어서니 수녀님 한 분이 아주 기쁘게 맞아주시면서 당신은 지금 청소 중이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셔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우리는 수녀님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 다니며 순례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침 그날 안내실 담당인 셀레시아 수녀님께서도 우리처럼 기뻐해주셨고 배려 덕분에 우리는 꽃으로 뒤덮인 수녀원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신나게 순례를 하고 다음 수도회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총원)는 금정구 오륜대 성지순례 때 들렀을 때 아름다운 미사에 반했던 바로 그곳에 위치한 수녀원이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녀원 문을 두드렸는데, 마침 수녀님께서 식사하시다가 나오셔서 우리 일행을 반겨주셨다. 그라시아 수녀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수녀님께서 총원장 수녀님을 모시고 오셨다. 총원장 수녀님께서 빨마수녀원에 들어올 자격과 수녀원의 취지 등 여러 가지 말씀을 아주 차분하고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수도원 순례를 하면서 이 수녀원도 헬레나 형님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수도원 중의 한 곳이었는데, 참으로 좋은 인상을 가슴에 간직할 수 있었던 수도원이었다. 그렇게 총원장 수녀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다가 다음 수도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오륜대를 나왔다.

오륜대를 나와서 바로 옆에 자리한 한국외방선교수녀회(본원)로 출발했다. 한국외방선교수녀회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안에 위치한 수녀회로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나 정겨웠다. 신학교 건물이 마치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과 거의 비슷해서 대신학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마치 이전 나의 아름다운 인생터로 되돌아가는 듯한 행복하고도 즐거운 기분으로 들어가서 수녀원 입구의 벨을 누르고 보니 2시부터 수녀님들의 휴식시간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내문을 읽기도 전에 이미 벨을 눌러 버렸으니…. 조금 후에 수녀님께서 나오셔서 대단히 죄송했는데 그것도 잠시, 우리를 맞아주신 쥴리 빌리아르 수녀님의 표정이 얼마나 해맑고 밝았는지 우리 모두는 서로 쳐다보고 웃고 재미있어 했다. 그런 나를 보신 수녀님은 자기와 비슷하다고 하시면서 더 신나게 웃으시는 바람에 특유의 내 장난기가 발동하면서 그곳이 수녀원이라는 자체도 잊어버리고 쥴리 빌리아르 수녀님의 안내로 순례를 시작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들어간 성당에서 특이한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수녀님께서 창문을 닫으시고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시고, 우리들에게 그 그림의 뜻을 묻기도 하면서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수도원 성당을 다 둘러보고 수녀님께서 다시 3층으로 올라가자고 해서 3층으로 올라가 내려다 본 수도원과 대신학교의 정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수녀님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다음 수도원으로 출발했다.

         

수영구 광일로에 위치한 사랑의 성모 수녀회(BPS)는 광안성당 바로 옆 골목길에 위치한 수녀원으로, 일반 3층 가정집 같은 수녀원이었다. 몇 차례 벨을 눌렀는데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아 수녀원 정경만 눈에 담고 돌아섰다. 하긴 다짜고짜 찾아갔으니 누굴 탓하랴! 수녀원을 돌아나오니 마침 광안성당에서 바자회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구경도 할 겸 들러서 안나 언니랑 나는 셔츠를 하나씩 사서 다음 수도원으로 향했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총원). 사실 이번 부산 지역 수도원 순례의 목적이 바로 이곳 수영구 수영로에 자리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가기 위함이었다. 수녀원 초입부터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진정시키며 수녀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름답고 가슴 떨리는 추억들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황 아가다 수녀님, 글로리엣다 수녀님, 다리아 수녀님, 필리아 수녀님, 이해인 수녀님…. 여러 수녀님과 함께 송년, 새해, 성탄 등을 같이 보내면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냈던 옛 기억들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여서 마음을 진정시키며 경비실에 들러 우선은 황 아가다 수녀님을 찾았다. 그런데 한 달 전에 인사이동으로 지금은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아! 그렇게 그립고 뵙고 싶었던 수녀님들이 한 분도 계시지 않는 것이다. 눈물이 흘러 내리려 했지만 언제나 기대는 기대로 끝나는 것,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수녀님의 안내로 성당으로 들어가 조배를 드린 다음 박물관으로 가서 수녀원 역사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나오려는데, 안내해 주시던 수녀님께서 나더러 “혹시 혜인이 엄마?”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반가운 소리였는지 “예, 맞아요.”라고 했더니 그때부터는 지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조금 일찍 알았으면 실컷 놀다가 주무시고 가도 되는데.” 라고 하셨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기고 떠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니 아쉬움만 가슴 가득 안고 수녀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올리베따노 수녀원을 나와서 이번에는 중구 망양로에 있는 삼위일체 수녀회(한국 본원)를 찾아가는데 수녀원 바로 옆이 사찰이었다. 언덕배기에 있는 수녀원인데다 5시가 다 되어 가기 때문에 혹시나 기도시간에 방문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벨을 누르니 수녀님께서 나오셨다. 수녀님께서는 “우리는 이렇게 집 한 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원도 뒤뜰도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수녀님의 표정이 얼마나 맑고 밝던지! 기도시간인 것 같았는데도 막달레나 수녀님께서는 당신이 사진을 잘 찍으신다며 우리 사진도 찍어주시고 편안하게 반겨주시는 바람에 돌아나오는 기분이 무척 행복했다.

그렇게 수녀님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서구 천해남로에 자리한 마리아 수녀회 급히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벌써 5시 58분이었기 때문이다.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 헬레나 형님께서 어릴 적에 그 수녀원에 입회하고 싶어하셨던 이야기를 하셔서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수녀원으로 향했다. 나도 정말 가 보고 싶은 수녀원이었다. 소 알로이시오 가경자 신부님께서 창설하신 모든 미혼모들의 보금자리이며 모든 힘든 청소년들의 친정집이기도 한 마리아 수녀원에 꼭 가보고 싶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가기로 하고 수녀원 입구에 도착하여 수녀원 입구까지 올라갔는데 늦은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축구를 하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조금 후에 데레사 수녀님께서 나오셔서 우리 일행을 반겨 주시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며 마리아 수녀원에서 하는 일들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1,000명이나 되었으나 지금은 200명의 아이들이 지내고 있는데, 아이들은 10시가 넘어야 학원에서 돌아오기 때문에 수녀님들도 그때까지 아이들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꼭 이렇게까지 밤늦도록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조금 씁쓸해 지기도 했다. 처음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께서 창설하실 때는 아이들이 미혼모의 아이들과 고아들이라서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만 생기면 이곳 아이들 짓이라고 해서 신부님께서 초·중·고·전문 대학교를 설립하셔서 아이들이 기죽지 않게 자라나도록 하셨다고 해서 너무나 놀랐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전문대학교는 이미 폐지되었고 고등학교도 지금은 3학년만 있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의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이 지나쳐서 수녀님들께서 조금 어려운 데다 지원자들조차 없어서 큰 문제이지만, 그 바람에 우리나라보다는 동남아 쪽으로 진출해 가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마리아 수녀원을 돌아서 나오는데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셨다. 수녀원을 뒤로 하고 ‘하느님,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대단하십니다!’를 감탄 또 감탄하면서 내려왔다.

어느 수도원에 가도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 듬뿍듬뿍 받아 돌아올 수 있는 수도원 순례! 참으로 수도원 순례를 잘 시작한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 수도원 순례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주차해 둔 차를 가지러 가는데 오늘따라 이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사실 너무 힘든 것은 순례를 마친 후 ‘다시 나의 집까지 잘 운전해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 몸이 땅속으로 빨려들 것 같았으므로…. 그럼에도 성지순례와는 또 다른 수도원 순례를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 가득 받아 안고 돌아 갈 수 있으니 힘들어도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인지, 이 모든 게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