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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 ‘최우수상’ 수상작
루시아 어르신의 파티마홈 적응 이야기


글 성정아 엘리사벳 | 파티마홈 전 사회복지사

10월호부터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천주교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주최한 “2019년 대구카리타스, 우리들의 이야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회복지사들의 수기를 한 편씩 소개해드립니다. - 편집자 주(註)

 

파티마홈은 ‘집’입니다. 어르신의 살맛나는 집이 되고자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파티마홈은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위치한 요양원입니다. 2015년 5월 2일 여섯 분의 어르신 입주를 시작으로 지금은 75명의 어르신이 지내고 계십니다. 파티마홈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치매나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가족과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오시게 됩니다.

요양원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티마홈에 입주 상담을 하러 오시는 가족과 어르신들은 요양원에 대해 ‘창살 없는 감옥’,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의 가슴은 무너질 듯 아팠습니다. ‘왜 요양원을 이런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을까? 어르신이 사시던 곳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것처럼 편안한 집이 될 수는 없을까?’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저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입주를 도우며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던 중에 저는 참 특별한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루시아 어르신께서는 입주하신 지 다섯 달이 지나도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며 이곳을 어려워 하셨습니다. 루시아 어르신은 20년 넘게 레지오 활동을 하실 정도로 신심이 깊으신 분이고 평생 이웃과 정을 나누고 성당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살아오셨는데 ‘이곳이 얼마나 낯설고 답답하실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애잔함이 생겨 더욱 사랑해드리며 보듬어드렸습니다.

치매로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르는 어르신께서는 신기하게도 매주 금요일이면 예쁘게 단장하시고 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가씨, 오늘 금요일이제? 내 레지오 단장이라서 단원들 기다린다. 택시비 좀 빌려도.”라며 졸라댔습니다. 다음에 가자고 얘기해도 고집 센 어르신을 말리기는 힘들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사시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고 가족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여갔습니다. 매번 어르신의 이러한 고집으로 인해 가족들도 어르신을 모시고 집에 다녀오기를 반복하며 지쳐가는 듯 보였습니다. 어르신께서 집에 가겠다고 화를 내고 폭언을 하시면 직원들도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집에 가지 못하는 분노를 다른 어르신께 푸시며 싸움이 일어나서 더 이상 파티마홈에서 지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어르신의 치매 증상에 대처하기도 힘들고 24시간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 이곳에 적응하기 힘들면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르신께서 만약 다른 곳으로 가신다면 자유롭게 다니지도 못하시고 남은 여생을 인간답게 지내시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르신을 뵐 때마다 자꾸 안타깝고 연민이 생겨 어떻게든 어르신이 여기서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르신의 열정적인 레지오 사랑을 이어가면 적응에 도움이 될까 하여 저는 어르신들과 ‘파티마홈’ 레지오를 만들었습니다. 단장으로 루시아 어르신을 추천하고 어르신과 함께 레지오 회합 때 쓸 성모상도 샀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레지오를 하시면서 이곳에 조금씩 적응해 가셨고 단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높아 매일 전교를 하시면서 비신자 어르신들도 성호경을 긋고 식사를 하실 수 있는 기적을 만드셨습니다. 어르신께 레지오 단장의 역할을 높일 수 있는 구실을 만들고자 아픈 어르신이 생기면 단원들과 같이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함께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어르신의 단기 기억력이 떨어져 기도문을 매번 두세 번씩 더 하시더라도 기다렸습니다. 매주 미사가 있기 전날에는 독서를 연습해서 미사 때 직접 독서를 하시면서 전례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어르신께 레지오 단장의 책임감과 전례 봉사자라는 역할을 드리니 집에 가자고 하는 소리가 줄어서 ‘이제 적응되셨는가보다.’라고 안심할 때쯤 어르신께서 갑자기 가출을 시도하셨습니다. 옆방의 어르신께 택시비 만 원을 빌려 몰래 나오셨다가 마주쳤습니다.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이곳으로 이사 오셨다고 알려드렸지만 단기 기억장애로 자주 잊어버리셔서 지속해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구대교구에서 한평생을 봉사와 본당을 위해 애쓰신 어르신들을 위해 집을 지었으며 루시아 어르신께서 그 입주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루시아 자매님께

찬미예수님! 루시아 자매님 환영합니다. 여기 파티마홈은 평생 동안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본당 생활에 충실한 신자들이 편안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 자매님께 무궁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파티마홈에서 편안하게 생활하시길 기원합니다. 자매님의 축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편지를 읽으신 어르신께서는 날듯이 기뻐하셨고 본인이 평생 성당을 위해 일해 온 것에 대해 자랑하시며 봉사자, 가족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면서 자부심을 느끼셨습니다. 편지 덕분에 가족이 본인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신 어르신은 이제 완벽하게 적응하시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가족과 외박하고 돌아온 어르신께서는 “아가씨, 내 이제 집에 안 갈란다. 저번에 딸내미들하고 집에 갔다 왔는데 걱정했던 꽃나무들도 잘 있고, 집에는 이제 불편해서 못 있겠더라. 내가 먼저 교구에서 지은 집에 오자고 캤다 아이가.” 하시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어르신의 웃음에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지친 가족들이 어르신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면 다시는 저 웃음은 볼 수 없을 뻔했다는 생각에 안심되기도 하였고 어르신께서 정말 이곳이 본인 집처럼 편안해하심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파티마홈에는 어르신의 집이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시도록, 본인의 일이 되도록 어르신께 묻고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드립니다. “살맛나는 집”이 되기 위해 어르신 개개인의 삶을 생각하고 궁리하며 루시아 어르신의 웃음처럼 입주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을 오늘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