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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11월 3일 연중 제31주일 : 루카 19,1-1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9장 1-1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 십시오.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지나가고 계신 곳은 어디입니까?(1절)

- 자캐오는 어떤 사람입니까?(2절)

- 그는 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까?(3절)

-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어떻게 했습니까?(4절)

-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5절)

-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7절)

- 자캐오는 예수님께 어떤 약속을 했습니까?(8절)

-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9~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구걸하던 눈먼 이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8,42)시며 고치신 후(35-43절) 그와 함께 예리코로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이제 자캐오를 만나시어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19,9) 오늘 복음은 이렇게 믿음과 구원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강조하며 이야기합니다.

자캐오는 예리코의 세관장인 부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업적인 죄인이었고 선천적으로 키도 작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자캐오가 이 두 가지 약점을 극복하고 구원을 얻는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자캐오는 많은 군중으로 인해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육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체면과 위험을 무릅씁니다. 그는 예수님을 앞질러 달려가고, 또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런 그를 먼저 보신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열정과 노력을 미리 알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미 아시는 듯이 “자캐오야!”하고 이름을 부르시고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씀을 그대로 따라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드러낼 행동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이 있으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구약에서 재산상의 손실은 1/5을 보태어 갚아야 했고(레위 5,23-24) 네 배로 갚아야 하는 경우는 양을 도둑질했을 때였음(탈출 21,37)을 생각한다면 자캐오의 이 말은 아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9-10절) 예수님께서는 잃은 이들의 한 대표로 자캐오를 내세우시며 그를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의 자손, 곧 믿음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캐오의 회개는 자캐오만이 아니라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이에게 구원이 내리게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처럼 예수님께 투덜거리며(7절)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면과 위험을 무릅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인정하시고 함께 머물러 주실 것입니다. … 이제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회개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생각해 보고,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1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루카 20,27-38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0장 27-38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27절)

-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은 무엇입니까? (28~33절)

-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35~36절)

-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38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20,9-18)를 들은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께 손을 댈 기회를 엿보다가 앞잡이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게 되고(19-26절), 이어서 사두가이들과 등장하여 예수님과 논박합니다. … 오늘 복음인 부활에 관한 사두가이들과의 이야기는 이런 논쟁들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때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이들의 주장을 부끄럽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들은 오경만을 경전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로 주어진 “후손에 관한 규정”(신명 25,5-6)을 근거로 하여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일곱 명의 형제와 결혼하고 죽은 여자의 경우 부활이 있다면 일곱 명의 남편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일부일처를 가르치는 모세의 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부활은 없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 사두가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해서 사두가이들이 근거로 삼았던 모세오경 중 탈출기를, 그것도 모세가 한 하느님 체험의 시작점이자 모세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조상들에 관한 말씀인 3장 6절을 근거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는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이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 성조들은 이미 죽은 이들이지만 그들이 되살아나 하느님 앞 에서 살아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며 사두가이들에게는 하느님 앞에서 다시 사는 부활(復活)을 증거하는 말씀이 됩니다.

부할 사건과 부활 신앙은 한 처음부터 준비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다니엘 예언서(12,2-3)와 마카베오서 하권(7,14; 14,46)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약의 부활 신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활 신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이 시작되기 전, 구약 시대의 후반기에 깨닫게 된 이 신앙은 의인들에게만 유보된 것으로 모든 이의 부활과 심판을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과 구별됩니다. …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38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우리는 부활할 사람들입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 주저앉지 맙시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갑시다. 우리는 부활에 참여하여 천사와 같아져 더 이상 죽는 일이 없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죽음은 부활을 향한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우리 신앙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에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영혼들이 주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청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2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 루카 21,5-19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1장 5-19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들은 성전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5절)

-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해 이르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6절)

-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어떤 표징들이 나타난다고 하십니까?(8~12절)

- 예수님께서는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도록 무엇을 주십니까?(15절)

-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루카 21,1-4)을 보시고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시며 성전 파괴(5-6절)와 재난(7-19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파괴(마태 24,1-2; 마르 13,1-2)와 시작되는 재난(마태 23,3-14; 마르 13,3-13)에 대한 예고는 모든 공관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르코 복음과 비교해 보면, 그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전해 주고자 하는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13,1)에서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답하신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다릅니다. 대답 말씀이 아니라 성전을 이루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에 관심을 드러내는 몇몇 사람의 말에 예수님께서 오지랖 넓게 참견하시면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 먼저 개입하시어 종말(終末)에 대해 생각하고 대비(對備)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성전은 헤로데 대왕이 재건한 것으로 아름다운 흰색 돌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원 예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전에 바쳐져 그 주변에 놓여져 있었던 것들로 사람들은 이런 성전의 외적인 화려함과 풍요로운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관점에 개입하시어 화려함과 풍요로움의 종말과 허물어짐을 전하시며 성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십니다.

성전 파괴의 말씀을 종말에 관한 말씀으로 알아들은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듯이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그때와 그때에 일어날 표징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된 때에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8절) “무서워하지 않을 것”(9절)을 당부하시면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18절)이니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19절)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련하여 임박한 종말에 대해서 전하지만 그 후에 기록된 루카 복음서는 “바로 끝은 아니다.”(9절)라는 말씀처럼 ‘종말의 지연(遲延)’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긴장을 전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이 성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요한 2,19.21 참조)로 새로운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7; 2코린 6,16)이 된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자신의 몸가짐에 대해 성찰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중심은 화려함과 풍요로운 외형보다 내면에 있습니다. 외적인 것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종말을 생각하며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모시는 새로운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이며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종말(終末)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살아오면서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 각자가 현실적으로 인내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실천해 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루카 23,35ㄴ-4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3장 35ㄴ-4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지도자들과 군사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35~37절)

- 예수님의 머리 위해 붙어 있던 죄명 패에는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38절)

-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들의 태도는 각각 어떻습니까? (39~42절)

- 저를 기억해 달라고 했던 죄수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4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 새해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주일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오늘 복음은 조롱만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하는 죄인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전하고 끝을 맺으며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조롱하기보다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깨닫도록 안내합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먼저 지도자들이 빈정거리고(35절),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36절),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가 그분을 모독합니다(39절). ‘네가 메시아라면, 그리고 왕이라면, 자기 자신을 구원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메시아라고 임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여겼고 이제는 비아냥거립니다. 그들이 알고 원했던 메시아와 임금들은 세속적 관점에서였고 십자가는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실패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롱은 그들의 관심이 세속적인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음을 은연 중에 드러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도 그렇게 세속적인 것에만 집중하며 한 해를 보내진 않았는지요?

복음의 말미에 네 번째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이전의 세 부류와는 다릅니다. 그는 예수님 편에서 예수님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로부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 죄인의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하며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만나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보낸 올 한 해는 어떠했는지요?

루카복음은 그를 죄인(39절)이라고 부르길 애써 꺼리며 “다른 하나”(40절)라고 부릅니다. 그는 죄인인 지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사람이었고(40절), 하느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40절), 예수님께선 무죄한 분이심을 고백하며(41절), 예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42절). 그랬기에 그는 예수님을 모독하는 이를 꾸짖으며 예수님을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 한 해 나는 어떤 예수님을 기다렸고 만났는지?, 그 가운데 내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성찰해봅시다. … 십자가는 나의 내밀(內密)한 모습을 만나게 합니다. 우리가 만난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으로 안내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한 해 하느님을 위해, 가정과 신앙공동체를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며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에도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모시고 살기 위한 각자의 결심을 나누고 실천해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7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