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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태양 떨어뜨리기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십팔사략(十八史略)』이라는 중국 역사책에는 창조 설화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세상의 동쪽 끝에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거기에는 천제(天帝)의 열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리가 셋 달린 황금 새들이었는데, 하루에 한 마리씩 날아올라 서쪽 끝으로 날아갔습니다. 그게 바로 태양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대로 하루에 한 마리씩 날아올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춰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 아들이 장난기가 발동해서 한꺼번에 같이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에 태양이 열 개나 등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장난이었지만 세상은 난리가 났습니다. 태양이 열 개나 하늘에 떠 있으니, 기온이 올라 펄펄 끓고, 농작물은 다 말라 타버리고, 이상 기온으로 곳곳에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당시 나라를 다스리던 요(養) 임금이 천제에게 제사를 지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천제는 아들들의 장난을 알고는 신예(神?)라는 우직한 신을 세상에 보내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신예는 뛰어난 활솜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살 열 개를 가져가서 정확하게 한 발씩 쏘아 태양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다 태양 열 개를 모두 떨어뜨릴까 우려하여 요 임금이 몰래 한 발을 숨겨 다행히 태양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천제는 분노했습니다. 아이들을 야단쳐서 사태를 해결할 줄 알았지, 자기 아들들을 죽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신예는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이야기는 전합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오늘날의 지구 온난화가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점차 뜨거워지고 있고, 급격한 기후 변화는 지구상에 사는 인류는 물론 많은 생명체에게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요즘은 마스크 사용과 배달음식, 택배 배달로 인해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 더 큰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문제의 심각성은 절감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회용품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하려면 당장 불편한 게 많아서 그냥 모른 척 대충 살던 대로 사는 것이지요.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입니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 환경 회의’에서 국제 사회가 지구의 환경 보전을 위해서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제정한 날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환경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의 날(3월 22일)’과 ‘지구의 날(4월 22일)’을 거쳐 환경의 날을 보내며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 년 가운데 하루를 잡아 환경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1년 365일이 바로 지구의 날이고 환경의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 기후학자들과 환경학자들은 지구의 환경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비관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사는 이 ‘공동의 집’, 지구를 생각하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힘쓴다면 훨씬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예가 활을 쏘아 뜨거운 태양을 하나씩 떨어뜨리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예가 되어 지구의 온도를 낮추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건 결국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는 것, 무더운 날 에어컨 사용을 줄이고 전기를 아끼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것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하나같이 불편한 일들입니다. 내가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