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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천사의 양식” Panis Angelicus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수난과 죽음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은 늘 함께 머물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가끔 그립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전도 여행을 다니며 기도하고, 때로는 꾸지람을 듣고, 때로는 수많은 기적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던 꿈같았던 그 시간이 말입니다. 제자들은 어떤 기억을 안고 복음을 전파하러 다녔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그들의 여정에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나셨지만 상심에 잠겨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는 못합니다. 날이 저물고 저녁이 되어 예수님과 제자들은 묵어가려고 어느 집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언제나처럼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의 기억 속에 한 장면이 스쳤겠지요.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하신 예수님. 잔을 드시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하신 예수님. 그제야 제자들의 눈이 열리고 예수님이 보입니다. 이 강렬한 기억과 체험은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마다 제자들이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사 때마다 기억되고 행하여지는 성찬의 전례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성사를 기리는 날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성체를 공경하는 찬미가들도 꾸준히 작곡되어 왔는데, 1264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요청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성무 일도를 위해 다섯 개의 찬미가를 작곡합니다.

 

〈입을 열어 구세주의 영광을 찬미하세〉 (Pange Lingua),

〈흠숭하나이다〉 (Adoro te devote),

〈천상의 말씀〉 (Verbum supernum prodiens),

〈거룩한 잔치〉 (Sacris solemniis).

〈시온아 찬양하라〉 (Lauda Sion).

 

이 중〈거룩한 잔치〉의 마지막 두절이〈천사의 양식〉입니다. 라틴어로는 ‘Panis Angelicus’인데 'Panish ‘빵’, ‘양식’으로 번역되고, ‘Angelicus’는 ‘천사’라는 뜻입니다. 가톨릭 성가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187번,188번〈천사의 양식〉, 503번〈생명의 양식〉입니다. 가톨릭 성가 503번〈생명의 양식〉은 프랑스 낭만시대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가 1872년 오르간, 하프, 첼로와 더블베이스 반주의 테너 독창곡으로 작곡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소중한 것에 익숙해져 그 가치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지금도 매일 우리가 얼마나 귀한 것을 누리고 있는지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코로나19로 인해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전면 중단되고, 미사 참례가 쉽지 않았던 지난해, 그때서야 미사에 참례하고, 성찬의 전례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 미사가 재개된 이후의 첫 영성체, 그 뜨거움이 금세 식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지금’, ‘여기’ 예수님이 새로운 생명으로 내 안에 살아 숨 쉬도록 ‘기억’하고 ‘행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