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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평신도들의 세계3
- 투서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대구의 어느 본당 신부 시절, 어떤 신자들이 저에 대한 안 좋은 내용의 투서를 교구청에 접수시킨 일이 있습니다.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아 서로 간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2021년 3월 1일, 이곳 선교 본당에서 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투서가 스트라스부르교구청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발신자는 코로나19 이후 회심한 L 아줌마를 중심으로 한 ‘세나클르’ 기도팀 중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F 자매입니다. 이번에는 저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주임 신부와 사목회 봉사자들 중 핵심 인물들이 본당 사목을 불균형하게 집행하며, 선교사 협력 사제인 저를 부당하게 대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대주교님으로부터 조사 명령이 떨어지고 주교 대리 신부께서 진상 조사에 착수했으며, 주임 신부를 중심으로 핵심 인물들이 분기탱천 했던가 봅니다. 그러던 3월 17일 오후, 저는 담당 주교 대리 신부께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질문1: ‘네가 선동했냐?’ 질문2: ‘주일학교 교리반 피정 일정을 알고서도 성가대 준비한답시고 무시했냐?’ 질문3: ‘문제가 있으면 왜 진작 주교 대리 신부와 의논하지 않았냐?’주교 대리 신부와 전화 통화를 하던 오후, 18시 통행금지 때문에 그날 저녁에는 만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7시 제가 기거하는 사제관에서 면담을 약속합니다. 첫째 질문 충격이 급격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일으킵니다. 둘째 질문 꼬투리를 잡기 위한 질문으로 유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셋째 질문에는 간단히 답변하면, 모든 상황을 복음적으로 대처하고 선교사 입장에서 살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떠오릅니다. 그 결과, 과정상 동료 험담을 피하고, 크고 중요한 일들로 책임이 무거울 주교 대리 신부께 짐을 얹어 주지 않게 됩니다. 사실 교구 내 유력한 신부와 외국인 신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에게 마음과 귀가 기울겠습니까? 한국 내 외국인 신부들의 입장이 상상되었습니다. 인간적인 것과 복음적인 것의 갈림길을 만납니다.

 

주교 대리 신부께서는 제가 실무적으로 평일미사와 고해성사, 면담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의 불편과 목마름, 희망사항을 그들 가까이에서 더 잘 알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지 못합니다. 또 제가 배후 조종을 했다면, 그 혐의가 지금처럼 저에게 떨어지게끔 조작 - 조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외국인 신부가 시킨다고 실명으로 대주교님께 주임을 고발하는 편지를 쓸까요? 주교 대리 신부와의 첫 통화 후 매우 불편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는 마침 사순절이라 성무일도와 매일미사의 독서 복음들이 절실히 와 닿는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은 저 자신이 예언자가 되고, 어느 날은 고난 받는 종이 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에는 사도요 예수님 비슷하게도 느껴보며, 말씀과 더불어 사순절을 제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후 4월 말 현재, 네 차례에 걸쳐 주교 대리 신부와 면담을 가졌습니다. 나름 발전적입니다만, 오전 8시 30분 미사를 앞둔 아침 7시의 첫 만남은 언짢기까지 했습니다. 주임 신부 A의 입장과 사목회 총회장 H의 방어적 입장을 먼저 듣고, 저에게 화를 참고 있는 듯한 주교 대리 신부의 태도는 조금 과장하면 검사로서 범죄자를 취조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너 때문에 이런 편지가 주교관에 날아 들었으니, 너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 얼마나 공감이 되던지요.

그 사이 지역 차원의 평신도 협력자 MO 자매와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대화와 소통의 심리학 등을 공부한 분으로, 교구 행사에 특히 성녀 오틸리아 선종 1300주년 대희년의 교구 행사에 큰일을 맡고 있습니다. 저와 동갑내기 신자입니다. 그녀는 3월 초 사목회의에서 교구 유급 교사 IM과 본당 총회장 H에게 회의 초부터 제가 강력한 비판을 받는 모습을 보고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주교 대리 신부께 도움을 요청하여 두 분이 팀이 되어 문제 해결 차원에서 ‘경청 및 대화’에 나선 것입니다. 그녀의 대화 중 태도는 비교적 중립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주임 신부, 총회장, 유급 교리교사를 만나 경청하였고, 그들의 입장도 저에게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도 잘 경청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2차 면담 주교 대리 신부 J , 지역 평협 MO, 주임 신부 A,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하였습니다. 교구청에 접수된 투서 안에서 비판을 받는 사람은 주임 신부와 총회장, 유급교사 등으로 대질 조사는 제가 받는 형국이었습니다. 또 편지를 쓴 사람은 몇몇 신자들인데 제가 추궁당하며 답변을 해야 하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 순간 기록되지 않은 선교 역사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까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기방어 못지 않게 '나의 신앙을,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칼끝처럼 벼려졌습니다.

문제가 된 사건들의 단편적 해석들만을 근거로 기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저에게 추궁을 하니, 입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은경축을 맞아 선교사로 나서며 나머지 생명을 바쳐 충심으로 하고자 한 일, 그간 알자스에 와서 해 온 일, 시간별로 저에게 주어진 상황, 저의 의도와 일의 진행 과정 등을 설명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의도와 달리, 나름 객관적 성과들도 열거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임 신부의 입장이 곤란해졌습니다. 그간 주임 신부가 저에게 가졌던 오해와 몰이해, 그가 신자들에게 쏟아낸 저에 관한 비난 등을 신자들을 통해 전해 듣곤 했습니다. 마침 이번 기회에 교구 차원의 조사 보고 임무를 받은 두 명의 증인 앞에서 적어도 그의 입에서 나온 문제제기나 불평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설명, 해명, 방어가 되었습니다.

주임 신부는 급기야 연신 머리를 숙여가며 자기 가슴을 치며 ‘미안하다.’, ‘신자들이 너무 별나다.’, ‘내가 맺고 끊는 능력이 없는 탓이다.’ 등의 말을 열 번은 넘게 반복하였습니다. 화답 차원에서 저는 ‘ 그가 기본적으로 사목적으로 큰 책임을 감당해 주었기에 제가 작은 책임을 지고 편안히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분의 중재자는 안도하는 듯하였습니다. 끝으로 두 분 증인 앞에서 분명히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평소 청소년 밴드 미사 성가 연습 때문에 제가 기본적으로 책임질 임무를 소홀히 한 적이 있거나 누구를 방해한 적이 있느냐?’라고요. 왜냐하면 그가 성가 연습 시간을 줄이라는 등 간섭과 비판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두 증인 앞에서 말합니다. 그 불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기존 성가대원들이 그런 것이랍니다. 제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되묻자, 그들의 질투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사자회동 끝에 주교 대리 신부께서 저와의 개별 만남을 요구해 그의 사제관에서 3차 면담 합니다. 지난 번 대면을 통해 무슨 새로운 문제의식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선교 동기와 과정, 특기, 희망 사목형태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왔습니다. 무엇이든 대주교님의 결정을 주님의 부르심으로 믿으며 조건없이 순종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4월 29일 4차 면담. 주교 대리 신부께서는 오베르네 북쪽 30분 거리에 부임할 아프리카 신부 P가 저를 협력 사제로 요청하였는데, 저의 동의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조건 순종 말고 동의를 하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식별기간을 갖기로 하고, 성모 성월을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