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프랑스에서 온 편지
성모 마리아 좌석 번호 KE 45E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2021년 7월 14일 21시 KE 902 45D. 저의 이번 여름 휴가를 위해 예약된 비행기 좌석번호입니다. 중앙 좌석 세 번째 줄 중 좌측 통로쪽 좌석이며, 우측으로 45E와 45F가 있습니다. 45F에 자리잡은 손님은 우측 줄에 통째로 빈 좌석으로 이동해서 더 편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와우, 빈자리 찬스. ‘누워서 갈 수 있겠구나!’ 세 좌석을 차지하고 누워 봅니다. 머리를 기준으로 발을 뻗어 보니 냄새나는 발이 통로 쪽으로 살짝 벗어납니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발을 살짝 안으로 모읍니다. 잠시 후 불편을 느껴 팔걸이를 베개삼아 머리를 살짝 얹습니다. ‘ 밥차가 지나면서 퉁 부딪치면 어쩌지?’ 머리를 겸손하게 살짝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저의 키가 기대 이상으로 큰 줄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결국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무릎을 조금 세우며 안정된 자세를 잡습니다.

 

일어나 앉아 묵주기도 시작.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를 마칠 무렵, 가수면 상태에 이르러 우측으로 한칸(45E) 이동, 두 손을 하단전으로 모으고 가부좌를 틉니다. 웁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필요 이상으로 또) 몸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머리가 우측 하단으로 꺾여 경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납니다. 미리 연습해둔 수면자세를 취합니다. 와신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제1단, 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흘리심을 묵상하… 압… 시…… 다.’ 어떻게 잠이 들었을까요? 자신의 코고는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묵주가 손에 없습니다. 사방이 깜깜합니다. 전체 수면 시간인가 봅니다. 눈을 감고 누운 채 묵주를 찾습니다. 배 위, 허리춤, 머리맡, 엉덩이 밑, 등 밑, 좌로 우로 손 닿는 곳은 아무리 뒤져도 묵주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으으…’ 귀찮음을 감수하고 또한 여행 준비에 지친 피로감을 달래주는 행복 수면을 부드럽게 떨치고 일어나 앉습니다. 또 더듬이 작업. 결국 조명을 밝히지 않은 채, 세 좌석의 쿠션과 간이이불을 치우고, 중간 좌석부터 손으로 더듬기. 두어 차례 실패 후, 비행기 내 은은한 조명 아래 중앙 좌석에서 작고 하얗게 빛나는 은빛 타원형 메달을 찾아냅니다.

‘파리의 기적의 메달은 아니고, 이건 뭐지?’ 미세한 조명을 뚫고 하얗게 빛나는 그것은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뒷면의 양쪽 기둥은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에잇!’ 주변의 실례를 무릅쓰고 좌석 조명을 밝혀 들여다 봅니다. 작은 글씨로 상단에 ‘메주고리예’라고 적혀 있었고, 성모상 뒷면의 타원형 안의 양쪽 기둥은 성당 정면의 양쪽 종탑이었습니다. ‘어느 순례객이 흘린 것인가? 고리가 여물게 닫혀 있는 것으로 봐서, 목에 거는 메달로 사용될 것이었거나 선물용 메달이었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엄마?’ 작고 분명한 외침이 저 안에서 일어납니다. 예상치 못한 단순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저를 동반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깜찍하고 매력적인 표징까지 주시고….’ 누군가의 잃어버린 물건이, 영적으로 결핍한 저에게는 ‘성모님의 전구와 보호의 표지’입니다. 좀더 생각해 보면 그 누군가를 동반하시던 성모님께서 주님의 현존과 보호를 전구하시며, 저의 옆자리에서, 저의 등 뒤에서, 저의 엉덩이 아래에서 저의 온갖 약점을 지켜주고 계신 것입니다. 위 기능 장애, 간헐적 요통과 치질, 전립선 비대증, 그리고 초급 선교사의 좌충우돌 고독한 투쟁 한가운데서 항상 당신의 위로와 지지를 알아채기를 바라시며…. 이제는 묵주 찾기. 좌석 조명 아래, 묵주는 좌석 밑에 둔 작은 배낭 위에 고요히 얹혀 있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도 반짝이는 ‘은빛 현존’과 더불어 밑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가방 위에 고스란히 얹혀 있는 ‘영적 무기’ 묵주도 의미와 위로가 됩니다. ‘성모님과 나만의 이 순간을 기념하자.’며, 그 메달을 묵주에 메어다는 동안, 짧고 강한 감동이 왈칵 눈물을 솟게 합니다. 마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분수처럼…. ‘주님께서는 항상 일상 안에서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 선포될 뿐 아니라 다양한 표징을 통해 당신의 현존을 보여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신다.’는 묵상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첫째, ‘마음이 산란하고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알아 챌 수 없음.’ 둘째,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고 해석하는 동안에도 ‘나의 트라우마와 상처와 혹은 인간적 이념이나 신념이 ‘위로부터 오는 신앙’보다 앞설 때는 심각한 논리적 오류와 영적 교만에 떨어질 수 있음. 셋째, 따라서 젊은 다윗처럼, 주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절실한 기도와 그 뜻을 한 점 의심없이 수행하고자 하는 열정과 투신’, 결국(나의 판단과 정의감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결과까지도 기도 속에 온전히 의탁하는 경우에만 알아 챌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정도의 것들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주님, 우리 하느님,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에게 더욱 잔인한 무더위와 매우 혹독한 코로나로부터, 그들의 건강뿐 아니라 삶의 의미, 신앙과 영원한 생명을 지켜주소서!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나쁜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교정은 주 하느님께서 알아서 주시고, 저희는 세상의 악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당신의 사랑과 선을 강력하고 실효적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이념과 신념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복음 신앙 안에서 이 여름을 당신과 즐기게 하소서!

‘어머니, 사랑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하시는 당신의 보호와 동반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저 고향으로 휴가갑니다. 어느 선교사가 말한, “한국 교회, 놀기에는 천국, 그 재미있는 지옥”으로요!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당신 현존과 도움의 표징을 알아채게 하소서! 당신의 전구로 저희가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깨어나게 하소서! 저와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당신 보호와 전구에 맡겨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