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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새우깡


글 이재근 레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교수

 

가격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정한다. 당연히 가격이 비쌀수록 좋은 물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싼 물건이 다 소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격은 싸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 이걸 ‘가치’ 라고 부른다.

 

나는 새우깡을 사랑한다.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늘 새우깡이 내방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 설명한다. 누구는 중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랑이라고 답한다. 나의 새우깡 사랑은 네 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엄청 예쁘고 귀여웠다.(어렸을 때 잘생기고 예쁜 아이는 커서 못 생겨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건 속설이 아니라 정설이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께서는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가실 때마다 항상 나를 데려가고 싶어하셨다. 예쁘고 귀여우면 얼굴값을 한다고 했던가? 당시 나는 나의 외모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따라서 외할아버지를 쉽게 따라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새우깡을 사주셨고 나는 외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함께 따라나섰다.

 

마흔 네 살이 된 지금도 나는 새우깡을 사랑한다. 그리고 항상 내방에는 새우깡이 있다. 이토록 좋아하는 새우깡 때문에 어렸을 적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초등학생 때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성인들이 타는 두발 자전거였다. 당시 우리집 형편으로는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끈질긴 노력이 결국 부모님의 마음을 돌렸다. 몇 년이나 졸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던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을까? 방법은 이러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 앞에 가족 앨범을 들고 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에 담긴 추억들을 부모님께 물어 봤다. 앨범 속에는 부모님 연애시절부터 나와 내 동생의 아기 때 사진과 초등학교 입학 때의 사진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부모님은 연애시절 이야기와 내가 태어날 때의 이야기 등을 해 주셨다.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은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앨범을 다 보고 난 후 부모님께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자전거가 너무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나는 9년 인생 처음으로 사회생활 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두발자전거의 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다른 친구들이 타는 네발자전거와는 속도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한 순간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또래 친구들이 모두 내 발아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반 친구 한 명이 네발자전거를 타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그 아이가 말했다. “나랑 자전거 바꾸자.” 나는 ‘이 아이가 미쳤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다시 말했다. “자전거 바꿔 주면 이 새우깡 너 줄게.”

 

그날 저녁 나는 네발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죽도록 맞았다.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새우깡 하나를 사서 친구 집에 가셨다. 그리고 나의 두발자전거를 다시 찾아오셨다. 자전거를 새우깡과 바꾼다는 것은 바보이거나 엄청난 재력가가 아닌 이상 말도 안 되 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비록 힘들게 선물 받은 자전거였지만 나에겐 새우깡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다. 가격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정한다. 당연히 가격이 비쌀수록 좋은 물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싼 물건이 다 소중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격은 싸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물건들이 있다. 이걸 가치라고 부른다. 가치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는 사람이 정한다. 가격이 싸더라도 그 물건에 추억이 담겨 있거나 이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그 가치는 더욱 더 올라 갈 수밖에 없다.

자전거와 새우깡은 가격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자전거 가격이면 새우깡을 엄청나게 많이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치는 다르다. 나에게 있어 새우깡은 자전거보다 더 소중하다. 더 가치 있다. 그래서 자전거와 새우깡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라는 말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과거 후회됐던 일들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바로 나에게 가치 있는 모든 것이다. 그건 물건일 수도 있고 지나간 추억일 수도 있으며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이 함께했기에 작년 한 해가 행복할 수 있었고, 올해도 그들이 함께할 것이라 믿기에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2년 올 한 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더욱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모두들 새해에는 대박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