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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은근슬쩍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아주 맑고 파란 하늘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까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세요. 눈부신 태양이 떠 있지요? 그리고 저 멀리서 조그만 점이 보이는데 점점 우리들 가까이 오고 있네요. 어! 어? 힘찬 독수리 한 마리입니다. 이 장면에서 무엇이 느껴질까요? 맑고 파란 하늘에서 평화, 눈부신 태양에서 열정과 따뜻함, 힘찬 독수리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뜬금없이 상상놀이냐구요? 파란하늘, 눈부신 태양, 날개를 쫙 펼친 독수리 한 마리, 이것들은 카자흐스탄 국기를 묘사한 것입니다. 국기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겠지요? 나라의 정신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국기에 대해 알아보고 느껴보고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 나라를 좀더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일 것이고 사랑하고자 하는 움직임일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선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찬미예수님!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있는 대구대교구 사제 이수환(바오로미끼)입니다. 여름이 되면 카자흐스탄에 온 지 6년이 됩니다.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올 한 해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선교가 무엇인가?’ 에 대한 저의 생각을 좀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선교는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게 있다고 해도 선교지의 환경, 선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교에 대한 생각의 나눔 없이 선교는 무조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로에 대한 오해만 쌓이거든요. 비록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지라도 하느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우리는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선 선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좀 밝혀 볼까 합니다. 이 코너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보고서가 아니고 편지니까 제 마음속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지요? 이곳에 오기 전에 선교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려 보자면 아프리카, 좀 더 구체적인 인물을 떠올려 보면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아주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모습! 환경의 악조건을 이겨내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용감한 모습! 참 멋진 모습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카자흐스탄에 와서야 선교의 구체적인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부단히 움직이고 무언가를 이뤄내는 모습도 선교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른 나라의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도 선교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부단히 움직이지 않고,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활동이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 스며들기 위해 마음을 내어놓는 것도 선교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것만을 전달하기보다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에 귀를 기울이고 의미를 찾아내는 움직임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네요.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해 보다 많이 알아가면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네요.’ 라고 은근슬쩍 이야기하며 조금씩 타인의 마음에 자극을 주는 것이 선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편지 초반에 카자흐스탄 국기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온 편지’인데 굳이 국기를 알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 국기를 알아가고 의미를 찾게 되는 그 모습 또한 선교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그냥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선교에 대한 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전달된 것 같아서 그럼 조금씩 이곳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지리적 환경을 말씀드릴께요. 지리적 환경만 봐도 이야기할 게 참 많거든요. 카자흐스탄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시죠?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이런 나라가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카자흐스탄이 세계에서 지리적 면적으로는 아홉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라고 해도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 같아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만 바라보고 비교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지리적 위치를 계속 이야기하면 카자흐스탄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날아가면서 약간 위쪽(북쪽)으로 가야한답니다. 중국, 몽골의 왼쪽 편에 위치 해 있으며 러시아 밑에 있습니다. 그 나라 안에서도 제가 있는 곳은 ‘알마티’라는 이름의 도시입니다.

이 나라의 크기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라고 했지요? 이 나라가 얼마나 크냐면 제가 있는 도시에서 서쪽 끝 국경으로 간다면 비행기를 타고 3시간이 좀 넘게 걸립니다. 북쪽 국경까지는 2시간 가량 가야 한답니다. 처음에 이 나라의 크기에 대해 감이 없을 때는 한국처럼 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우리나라 안에서 좀 멀리 이동했다 싶으면 차가 막히지 않을 때 5시간 정도 걸립니다. 보통 서울에서 부산이 얼마나 걸리는지 이야기하곤 하지요. 제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는 카자흐스탄의 크기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타고 4~5시간 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큰 나라에 왔다고 해도 나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한 감도 없이 그냥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여기는 이동한다 싶으면 하루를 잡아야 합니다. 이 말은 바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데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느긋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는 크기에 대한 스케일을 넓혀야 했습니다. 좁은 곳에 사는 사람이 넓은 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아니면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지리적 환경만으로도 생각할 게 참 많고 스스로 변화되어야 하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것이겠지만 반대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것입니다. 아무튼 스펙터클한 선교 생활입니다. 어! 뭐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다음 달에 또 이야기 들려드릴 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건강 잘 챙기며 지내시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

 

* 이번 호부터 이수환 신부님의 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가 연재됩니다. 많은 애독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