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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뜻밖의 행운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살다 보면 뜻밖의 행운을 맞이할 때가 있죠? 없다고요?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있을 예정이고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저에게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사제이자 선교사에게 행운이란 무엇일까요? 흔히들 바라는 ‘대박’, 이런 거요? 물론 뭐 그런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눈으로 직접 예수님의 모습을 보거나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보거나 신비체험 이런 것?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바로 ‘교황님의 카자흐스탄 방문’으로 교황님의 모습을 직접 뵈었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하셨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교황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서’를 강조하고 싶네요. 한국이 었다면 신자 수가 많아서 먼발치에서 교황님을 뵈었겠지만 여긴 한국처럼 신자 수가 많지 않아 교황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답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2014년 교황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사람이 약 17만 명 정도였는데 여기는 약 1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 ‘가까이서’를 강조할 만도 하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카자흐스탄 방문 목적은 제7차 세계 전통 종교지도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가 모여 인류 문명의 영적, 사회적 발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세계 전통 종교지도자 모임’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모임 일정을 소화하시는 중간중간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도 드리셨고 사제, 수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지셨습니다. 카자흐스탄 누루술탄에는 성당이 하나뿐이라 그곳에서 교황님을 뵙게 되었는데 늘 TV에서만 뵙던 분을 약 50m 앞에서 뵈니 참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순간 ‘아, 연예인을 만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라는 재미난 생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작은 성당에서 교황님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뭔가 깨달은 것이라고 하니 교황님의 말씀 중에서 ‘아! 그렇지.’ 라며 무릎을 탁 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말씀이고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만 제가 깨달은 것은 말씀이 아니라 교황님을 맞이하는 사제, 수도자,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교황님이 오신다고 하니 일정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성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과의 모임’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서는 설렘이라는 분위기가 흘러넘쳤습니다. 방송국 카메라도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고, 경호원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설렘과는 또 다른 긴장감도 감돌았습니다. 성당 밖 입구에서는 교황님을 맞이하기 위한 음악대가 축제가 곧 시작될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사제, 수도자의 손에는 교황님의 모습을 담기 위한 스마트폰이 꼭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가르멜수도회 수녀님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가르멜수도회는 봉쇄수도원으로 세상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조용히 기도하며 지내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봉쇄수도원과 스마트폰이 조화를 이룬 장면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드는 분이신가 봅니다.

교황님과의 모임이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가오면서 성당 안이 점점 조용해졌는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뒤로 향하면서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을 높게 들고 사진을 찍으려 했습니다. 저 또한 ‘와우! 교황님이 오신다.’ 라는 생각으로 성당 안 입구 쪽에 마음을 두다가 문득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느껴보았습니다. 그 당시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한 집중력은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졌던 어떤 모임에서보다 높았습니다. 순간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이 이렇게 높을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약에 우리가 이런 집중력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러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력, 우리 모두가 이런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었을까요? 아니요. 여러분들이 다니는 성당 신부님의 강론과 똑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특별하게 받아들인 건 바로 사람을 맞이하는 ‘집중력’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엉뚱한 것을 깨닫는 신부지요? 그래도 이건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저의 편지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해 봅니다.

그럼 다음 달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