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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착한 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 그리고 카리타스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교구 사회복지국 차장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두말할 것 없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목숨 걸고 돌봐준 착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시간과 재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야말로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죽어가던 사람을 헌신적으로 보살핀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대표적인 모범으로 손꼽힙니다.

사마리아인의 사랑 실천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그가 실천한 사랑이 즉각적이면서 동시에 지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마주친 불쌍한 이에게 일시적으로 좋은 일을 한 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한 응급처치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치료와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린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난 사람을 자신의 나귀에 태워 인근 여관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밤새 환자를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마리아인은 여행 중이었고 다음날 곧바로 다시 길을 나서야 했을 만큼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환자가 다 나을 때까지 무작정 곁에서 돌봐주기 어려웠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여관주인입니다. 이야기 흐름상 강도를 만난 사람이 온전히 회복되기까지 그를 돌봐주는 역할을 하게 될 사람은 여관주인입니다. 물론 그는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데 필요한 비용을 넉넉히 받았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의 헌신과는 직접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의 도움이 없다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온전한 회복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 나중에 치료비용이 더 들었는데 사마리아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추가 비용은 고스란히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관주인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카리타스적인 사랑 실천의 매뉴얼을 발견하고 나아가 공동선을 위한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리타스적인 사랑 실천의 가장 중요한 행동의 동기는 하느님 사랑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연민의 마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사제와 레위인도 강도를 만난 사람을 외면하며 지나칠 때 속으로는 ‘아이고. 이를 어째.’라고 혀를 차면서 최소한 연민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에게, 혹은 그 상황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피고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내가 가진 자원을 즉각 사용해야 합니다. 음식이 필요한지, 약이 필요한지, 옷이 필요한지, 관심이 필요한지, 위로가 필요한지, 차를 태워서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지, 아니면 시간을 내어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어야 하는지 등등. 만약에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홀로 고립된 삶의 테두리에 갇혀서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대구카리타스사무국(교구 사회복지국)에서 근무하면서 저는 각자가 속한 부서나 단체를 넘어 서로 연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를 연결시켜주고, 모두 함께 나서서 공동의 캠페인을 벌이거나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을 하고, 직접적인 홍보나 모금을 실시하거나 단체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소외된 이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할 뿐 신자•비신자, 국내(밀알회)•국외(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등 ‘이웃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월간 〈빛〉 잡지나 가톨릭신문 혹은 라디오 방송이나 주보, 각종 소식지, 홈페이지, SNS 등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 상황을 알리고 서로를 연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매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본당과 교구, 교구와 교구, 카리타스 사회복지시설과 자원봉사자, 학교, 병원, 시 •군•구 및 정부 등 사회의 많은 영역을 연결하는 일을 수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을 찾아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가톨릭사회복지대상)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수많은 청년 한명 한명을 인터뷰해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교구 장학사업)은 참으로 보람되고 가치 있고 행복한 일입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초연결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상이지만 만약 우리가 공동선을 위해 서로 연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각자 격리된 감옥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세상은 왜 이리 삭막할까?’라는 한탄과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겠지요.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구카리타스는 오늘도 관계와 연대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만드는 일에 열심히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