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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


글 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어느새 겨울이 조용히 떠나가고, 봄이 살그머니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요즘입니다. 얼어붙었던 땅에 연둣빛 새싹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쑥쑥 돋아납니다. 따스한 햇살의 응원을 받으며 꽃들은 온 산천에 알록달록 피어나고, 강변에는 작은 풀들이 훈훈한 바람에 초록 물결을 만듭니다. 여기저기 움트는 생명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봄(春)’과 ‘봄(見)’의 관계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순수 우리말인 ‘봄’이라는 단어가 ‘보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입니다. 그만큼 봄은 볼 것이 넘쳐나는 계절이지요.

이 아름다운 봄에 ‘바라봄(seeing)’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닮기 마련이고, 바라보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본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뭐가 그리 바쁜지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대충 훑어보고 지나칠 때도 많지요. 때로는 주변에 시끄럽게 주의를 끄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기에는 우리 감각이 무뎌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봄기운이 완연한데도 이 경이로운 순간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생태영성은 보는 능력을 회복하자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 창조 세계와 그 안에서 함께 사는 온 생명을 다시 보고,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가치와 의미를 헤아려 보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이는 대상 그 자체에 머물며 좀 더 오래 깊이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는 당장 눈앞의 것에 연연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의 깊은 차원을 추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조금 더 제대로 보려고 애쓰는 것,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키워가는 것, 그래서 새로운 눈으로 이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생태영성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요?” 길이 지저분해지고, 옷이 더러워지고, 걷기 불편하다는 등 부정적인 대답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이런 대답을 하더랍니다. “눈이 녹으면, 봄이 와요.” 그 아이는 눈이 녹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지 않고, 눈이 녹으면서 계절이 바뀌는 시간의 흐름까지 본 것이지요. 깊이 바라본다는 것(deep seeing)은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싶습니다. 두 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새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배웁니다.

 

지난 겨울에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바타’에도 마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게끔 하는 대사 하나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나비족은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며 인사하는데, 이 인사말은 상대방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진실하게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본다’라는 인사를 함으로써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바라봄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이 인사말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넘어 얼마나 진실되게 그 사람과 마주하는가?

 

이 지구 공동체에 진정한 봄날이 오려면,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와 학벌과 재산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의 속마음을 좀 더 깊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공동의 집 지구에 진정한 새봄이 오려면, 새로운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연을 더 이상 우리의 배경이나 자원 창고인양 보지 않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한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창조 세계의 중심에 누가 존재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시선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바라보며 “I see You.”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그분의 창조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다르게 봄으로써 우리는 다르게 행동하게 됩니다. 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살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