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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부샹 훼이취 한궈마?)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 | 타이중교구 선교사목

 

대구대교구에서 타이완으로 파견되어 사목하는 신부가 제가 처음은 아닙니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파견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된 일인데, 한동안 파견이 없다가 최근에 두 교구가 자매 결연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재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들은 바로는 옛날의 파견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환경이나 문화, 언어 등 적응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현지에서 살고 있는 저로서는 다른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바로 고향과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밀려오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그 시절 현지생활 적응에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과거보다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할 방법이 많고 어딜 가더라도 한류의 영향이 있기에 완전히 고립되어 살고 있다는 기분이 크게 다가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제가 외국에 있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면 외로움과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아마도 이런 기분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마음에 대해 스스로가 사치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해외 생활을 얼마 해 보지 못한 이가 멋모르고 내뱉는 말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보다 더 먼 곳에서 고생하시는 우리 교구 신부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글문을 연 이유가 있습니다.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다 평범하지만 제 마음에 남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잠시 그 드라마의 대사를 읊어 볼까요? “들어와, 밥 먹고 가. 뱃속에 뜨신게 드가야 또 살만해지지!” 이는 부모를 갓 잃은 주인공이 자주 가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입니다. 이 말에 주인공은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으며 눈물을 훔칩니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밥 한 끼는 부모를 잃은 주인공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외롭고 허전한 마음에는 누군가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끼처럼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 옛날 우리 어른들의 아침 인사가 “식사는 하셨어요?” 라고 했던 것처럼 먹어야 마음이 든든해지고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타이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는 “식사는 하셨어요? ”(츠바오러 메이?)라는 말로 인사를 합니다. 한동안 이 인사말을 본당 교우들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사뿐만 아니라 정말 음식을 준비해서 저에게 주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말을 배우러 길을 나설 때면 직접 만들어 온 토스트와 따뜻한 커피를 제 손에 들려 주기도 하고, 매일 같이 주먹밥이나 찐빵, 옥수수 등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거절도 해 봤지만 교우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와 비슷한 나이의 신부가 혼자 생활하는 모습이 마음 쓰였나 봅니다. 특히 제가 타이완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에는 교우 분들의 부모와 같은 마음은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러기에 저의 거절은 아무런 힘을 내지 못했지요.

부모와 같은 교우들의 마음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중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수업을 마치고 본당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뻘 되시는 자매님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매주 수요일은 그분들이 함께 모여 군무를 추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때쯤 한 분이 “신부님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물으며 직접 준비한 도시락을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시락을 열고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도시락을 주신 자매님이 옆에 앉아서는 계속 저를 쳐다보며 “맛있어요?”(하오츠마?)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맛있어요!”(하오츠!)라고 대답하며 식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분의 한마디에 저는 그만 기분이 상해 도시락을 덮고 자리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에 한 말은 이렇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나요?(니 부샹니엔 마마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부샹 훼이취 한궈마?)” 당시 타이완에 온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저에게 이 말은 마치 동물원에서 관람객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자리를 벗어났고 그분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의 상황과 그 교우분이 건넨 말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려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일이 있어 한동안 머물렀다가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던가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때의 그 상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이 말이 마치 드라마의 그 대사처럼 타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 주려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늦게나마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또한 평소 도움을 주시는 교우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겸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종종 가집니다. 이러한 관심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배가 든든해지면 여기가 타이완인지 대구인지 모를 만큼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