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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타스 사람들
그해 따사로운 봄날


글 정병진 요한|요한의집 사회재활교사

 

그해 따사로운 봄날,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의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 편의점인데예. 장애인 한 명이 와 있는데 빨리 와서 데리고 가이소!”, “네네,빨리 갈게요.” “여보세요?”, “여기 마트인데요. 빨리 오세요. 진열된 과자를 다 흩어놓고 지금… 아, 뭡니까 이게!”, “죄송합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마치 전쟁터에서 통신병들이 통화를 하는 것처럼 그 짧고 분주했던 통화에서도 수없이 많은 상황이 그려졌고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갔다. 내가 성인장애를 가진 요한의집 입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은 대구 동구 각산동이다. 처음 입사했던 2009년에는 동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변두리 지역이었다. 그러나 도시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큰 도로, 높은 빌딩,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어느덧 큰 번화가가 되었다. 한적하고 조용했던 동네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주변 환경만큼이나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 또한 처음에 비해 많이 변화되었다. 과거에는 성인장애 입주민의 욕구에 대해서 사회복지종사자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후원자들이 일차적으로 충족시켜주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입주민들이 사회 속 삶의 주체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시대이다.

이른 아침부터 외출 준비로 분주했던 그해 따사로운 봄날, 그날은 입주민들의 첫 외출이었다. 입주민들은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동네 주민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했던 성인장애인들을 갑자기 만나게 되면서 불편해하거나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참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비난, 차별, 인격 모독이 매일매일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본인의 권리를 찾아서 당당히 동네로 나갔다. 하지만 권리의 이면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입주민들도 스스로 깨우쳐야 했고 직원들도 함께 동참했다.

동네의 주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입주민, 동네 주민, 직원이 모두 함께 노력을 해야 했다. 우선 자주 가는 상점에서 먼저 인사를 나누고 물건을 계산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마치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입주민들이 상점 안을 휘젓는 모습에 동네 주민들은 무서움을 느끼거나 심지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입주민이 외출할 때는 직원이 함께 동반해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법, 인사를 하는 법, 계산하는 법을 알려주는 등 동네 주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장애인 인식 개선의 첫 번째 대상은 직원’이라는 당시 상임 이사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우선적으로 직원들을 위한 캠페인, 설문조사, 부스 운영 등의 노력을 했고, 동네 주민들의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상가에 자주 방문하여 인사도 드리고 고생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시원한 음료를 전달하는 등 항상 감사의 표현을 하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혼자 방문한 입주민에게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소속 기관으로 연락을 하거나 혹은 입주민과 동반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드렸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퇴근길에 잠시 들린 빵집의 사장님이 “요즘에 OO 씨가 잘 안 보이네요?” 라고 먼저 안부를 물어왔다. 그분의 근황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가게를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실 지난 6개월간 동네에서 우리 입주민의 이름을 불러주는 분을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장애인,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불리던 입주민이 이제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감동이었다. 물론 지금도 요한의집 입주민이 혼자서 동네를 다니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나 불편한 시선을 지니고 있는 이웃들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주민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큰 변화이고,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신고하거나 시설에 곧장 전화해서 쓴소리를 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입주민들과 소통하며 기다려 주거나 실수하는 일이 생기면 직접 가르쳐 주는 것도 큰 변화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동네 주민들과의 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입주민 한 분은 그날 안부를 물었던 빵집에 일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요한의집으로 빵을 배달해 주시던 사장님께 입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문의를 드렸더니 매일 시설로 빵을 배달하는 일을 흔쾌히 맡겨주셨다. 아직은 입주민들이 동네 주민들과 보통의 관계처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루어 내리라 믿는다. 세상 속에서 ‘자기다운 성장과 존중’으로 살아가는 요한의집 비전을 늘 마음에 두고 오늘도 우리 동네에 소통, 선도, 관심의 다리를 놓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