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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들
삼색 목도리


글 황수영 파우스티나|일심재활원 생활재활교사

작은 눈에 힘을 팍 주고 한 땀씩 장인정신으로 뜨개질을 합니다. 자그마한 본인의 키를 닮은 듯한 분홍색 털실은 얼핏 보기에도 그리 길지 않은 자투리 털실 같습니다. 이 실로 뜨개질을 하고 보니 손바닥만한 작은 조각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조각으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궁금증이 생기려던 찰나, ○○ 씨는 분홍색 조각을 과감하게 풀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각이 완성되면 곧장 풀고 다시 뜨개질을 반복하는 것 같았습니다. ○○ 씨는 자투리 털실 하나로 모양이 조금씩 다른 수십 수백 개의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품들은 공들여 만들어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지만 ○○ 씨에게 아쉬운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이지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진전이 없어 보여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괜스레 지루해지는 기분입니다. ‘내가 새로운 색깔의 실타래를 하나 선물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 씨에게 개나리를 닮은 노란 털실이 생겨 있었습니다. 이것도 길이가 그리 길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몇 번째일지 모를 분홍색 털실 조각이 또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풀지 않고 노란실을 연결하더니 뜨개질을 이어 나갑니다. ○○ 씨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또 몇 날 며칠 두 실을 이어서 뜨개질을 했다가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떤 모양의 작품을 완성할지 궁금한데 쉽게 보여 주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 씨의 뜨개질에 서서히 관심이 줄어들어 갈 즈음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파란 털실이 하나 더 생겨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실들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걸까? 무엇을 만들 생각이신 걸까?’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물어보면 되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괜스레 기다려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분홍, 노란색 실에 이어 파란색 실을 연결하여 뜨개질하기 시작했습니다.

“○○ 씨, 이거 뭐예요?” 목도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질문을 해 봅니다. “목도리예요.…” 눈꼬리와 입꼬리가 함께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니 ○○ 씨가 조금 쑥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 씨가 쓰시려고 만드는 거예요? 아님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드시는 건가요?”

선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물로 준다고 해도 저는 분명 아니겠지만 그냥 한번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 씨는 뜨개질을 잠시 멈추더니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요. 선생님 줄게요!” 그리고는 잠시 뒤 뜨개질을 마무리하시더니 저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마워요, ○○ 씨!”

솔직하게 ○○ 씨가 주신 목도리는 예쁘지 않습니다. 모양이 매끄럽지 않고 들쑥날쑥합니다. 군데군데 올이 풀려 날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며 목도리 치고는 길이도 짧습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귀여운 목도리입니다. ○○ 씨가 오랜 시간 고심하여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털실 하나는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고, 쓰임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털실 여러 개가 모이면 멋진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털실 하나로는 따뜻함을 나눌 수 없지만 다른 털실과 연결되어 뭉쳐지면 따뜻함을 지니게 됩니다. 이처럼 뜨개질은 여러 가닥의 실이 연결되어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도 여러 가닥의 실처럼 각각의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연결을 바탕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한다면, 보다 의미 있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 씨의 목도리를 메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