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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문명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얼마 전부터 본당을 인근 학교에 개방해서 교실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 덕에 낮 시간에 성당에 가면 늘상 아이들의 활기찬 재잘거림이 성당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성당 사무실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한 무리의 소녀들이 우루루 사무실 안으로 몰려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맞은편에 앉아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좀 멋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지라 “왜들 그러니?” 하고 물었습니다. “신부님, ‘송주’ 닮았어요!” “응? ‘송주’가 누군데?”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나오는 주인공이요!”

최근 볼리비아에 ‘천국의 계단’이라는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가 공중파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인이 희귀한 이 동네에 그나마 다른 신부님들보다는 제가 그 주인공을 더 닮은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옆에 한국 사람이라도 한 명 있어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면 크게 비웃었을 일이건만 이 아이들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장단을 맞춰 주었습니다.

“신부님, 그 주인공 ‘권상우’씨 만난 적 있는데….” 아이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까악!’ 하며 비명을 질러 대었습니다. 그리고는 질문 공세가 쏟아졌습니다. 그 권상우랑 친하냐는 둥, 여기로 데려올 수 있느냐(?)는 둥, 연락은 되냐는 둥….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했습니다. “아니, 친하진 않아,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서 그 배우가 영화를 한 편 찍어서 한 번 만난 것뿐이야. 나 그 사람 잘 몰라.” 하지만 아이들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한국말로 편지를 써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주고는 거기다 먼저 스페인어로 적어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편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하 편지 내용>
보고싶은 송주에게…
당신이 송주로 나왔던 드라마 참 좋았어요. 전 당신이 나온 드라마와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서(최지우의 극중 이름)와 함께 오셨으면 좋겠어요. 만나고 싶어요. 부탁인데,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사랑스런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당신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담긴 시디도 보내주세요.
사랑과 애정을 가득 담아,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은 귀여운 천사가…

한 아이가 ‘송주’에게 편지를 적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사진이 잔뜩 있는 스티커북을 들고 와서는 저에게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극중에서 최지우는 착하고 눈이 멀었다는 둥, 김태희는 아주 못됐다는 둥 손가락으로 배우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그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그저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진한 아이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바로 ‘TV라는 문명의 수단이 지닌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문명’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한 유럽 지역의 한국인 유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박사학위를 가진 한 유럽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는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한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문명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은 성장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제가 좀 어처구니가 없어 이렇게 대꾸했어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서방 문물이 들어오기 전에도 한국에 문명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어요!’ 라구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머물고 있는 볼리비아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볼리비아는 가난한 편에 속합니다.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지 않고 시골엔 수도와 전기도 없으며 그 밖의 기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산업기술과 과학이라는 것들만으로 소위 ‘문명’이란 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제 의견은 반대입니다. 더 많은 기술과 과학이 도리어 인간에게서 더욱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억지로 들여온 기술과 과학이 볼리비아 고유의 느림과 즐거움의 문화를 좀먹고 사람들을 바쁨과 삭막함에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적잖이 받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그 옛날 가난하면서도 떡 한 조각 나누어 먹던 따스함과 정은 온데간데없고 TV와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가지면 행복해진다’는 정식에 물들어버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서로를 밟고 일어서려고 칼날을 세우는 우리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따스함, 사랑’이 빠져버린 소유는 도리어 참된 인간 문명을 말살시키는 독약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볼리비아 아이들이 TV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고 이야기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흐뭇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느껴졌던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문명의 지배 가운데 영혼과 양심이라는 더 심오한 문명을 잃어가는 시대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번 한 달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피상적인 ‘문명’의 수단들에서 벗어나 참된 ‘문명’에로 다가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 TV 덜 보고 성체조배 맛들이세요. 젊은이들, 인터넷 덜 하고 성경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