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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를 찾아서
땅끝에서 천국까지


신상희(세레나)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삶은 종종 길고 먼 여행에 비유된다. 그리고 이런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나라로 향해 걸어가는 보다 더 특별한 순례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 우리보다 앞서 온몸으로 그 길을 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또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한 도보성지순례가 대구 가톨릭 대학생연합회 주관으로 마련되었다. ‘참가를 해 볼까?’ 처음 마음을 먹을 때만 해도 순례 장소가 대구대교구 안의 성지라는 점 때문에 약간 망설였다. 왠지 너무 소박한(?)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대구, 경북 지역의 성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동안의 내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참가자들은 여섯 개 팀으로 나뉘어 출발 전 3일 동안 준비 모임을 가졌다. 서먹서먹한 첫 만남을 지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 하나가 되어갔다. 6월 27일, 삼덕성당에서의 발대식을 시작으로 3박 4일의 일정을 시작했다. 관덕정에서 복자성당에 이르는 시내 구간을 붉은 티셔츠를 입고, 기기묘묘한 깃발을 들고, 신기한 노래(성가)를 부르며 걷는 우리를 시민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우린 함께 하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뜨거운 햇살에 지치고 땀에 젖은 초라한 행색을 한 우리를 수도원은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고, 싱그러운 자연 속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내 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해 주었다. 저녁과 새벽의 기도 시간, 맛있는 수도원 음식들, 재미난 영화, 수사님들의 포근한 미소… 아주 행복했다. 그러나 ‘떠남’은 순례객들의 운명! 수사님들이 만드신 순대를 먹어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떠나야만 했으니까.

 

가실성당(낙산성당), 신나무골, 신동성당으로 이어지는 둘째 날의 일정 역시 햇볕과 소나기, 피로와 갈증으로 힘겨웠다. 그러나 우리는 성가를 부르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함께 걸어갔다. 가실성당은 내가 대학 새내기 때 주일학교 교사연수회를 했던 장소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정정하신 현익현 신부님을 다시 뵐 수 있어서 기뻤다. 저녁에는 신동성당 신부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주(?)와 친교 시간을 통해 그간 쌓인 피로와 갈증을 풀어 내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우리들의 얼굴에 어떤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른 채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저기서 “너, 왜 그래?” “언니 얼굴은 그게 뭐에요?”라는 비명과 함께 푸하하, 킬킬킬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밤을 틈타 우리 얼굴을 도화지 삼아 주체할 수 없는 예술혼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 주모자를 만천하에 당당히 밝히고 싶으나, 순례 기간 동안 끊임 없는 야자 타임(연소자가 연장자에게 반말을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게임) 등등으로 힘드셨을 나랑 이름이 매우 똑같으신 인솔 지도 신부님을 생각하며 그냥 참으련다.

 

셋째 날 일정은 동명성당, 금락정, 한티성지 그리고 온천, 아가페 잔치로 마무리되는 고진감래(苦盡甘來) 코스로써 이번 순례의 꽃이었다. 빗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퉁퉁 부은 발을 끌며 힘든 길을 밟아온 우리가 마침내 안식처에 도달한 것이다. 처음엔 서로 이름도 잘 몰랐던 우리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솥밥을 먹고, 같이 목욕하는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서로에게 숨길 것이 없는 우리는 차력 쇼를 통해 옆 사람이 씹던 껌도 물려받아 다시 씹을 수 있는 일체감을 과시하였고, 음치와 몸치도 유명 스타 못지않게 관중을 휘어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밤은 그렇게 시끌벅적한 젊음의 열기와 함께 한 점씩 사라지는 불판 위의 고기와 더불어 깊어갔다. 황진이의 시조에서처럼 그 밤의 허리를 베어내어 깊이 넣어 두었다가 지치고 힘든 날 다시 꺼내 굽이굽이 다시 펼쳐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이번 성지 순례의 의미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하늘나라를 향해 먼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 무릇 모든 여행에는 반드시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천국으로 가는 여행에 필요한 지도와 나침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일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본받아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신앙 선조들의 삶일 것이다. 이제 나는 예수님과 신앙 선조들이 남기신 발자국에 내 작은 발자국을 맞추어 보며 나의 길을 걸어 나가려고 한다.

 

이번 순례를 위해 많이 수고하신 배상희 마르첼리노 신부님과 여러 봉사자들 그리고 우리 참가자 전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우리의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쳐본다. “땅끝에서 천국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