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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주일 밤. 우리 집에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외박 다녀온 아이들이 뒤늦은 어버이날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어버이날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올해는 그냥 지나가나 했다. 처음에는 ‘짜슥들, 올해는 카네이션도 하나 안 달아주나?’ 하며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시험 잘 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잊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조만간 나올 훌륭한 성적표를 상상하며 애써 섭섭함을 지워냈다.
그런데 외박 다녀온 주일 밤, 경당에서 훈화를 하려는데 학생대표가 신부님께 드릴 선물이 있다면서 카네이션 화분을 안겨주더니 어버이 마음을 개사한 ‘신부님 마음’이란 축가를 합창하고, 곧이어 고3 비오가 대표로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까지 낭독을 하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찡해오면서 난생 처음 내가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아버지이신 신부님께 편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세 분의 아버지를 모신다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님에도 저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와 친아버지, 그리고 ‘다른 한 분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모두 다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아버지의 아들로서, 당신께서 더욱 저희를 자랑스러워 하실 수 있도록, ‘내 맘에 쏙 드는 놈 하나 없지만’ 이 ‘모두가 내 맘에 쏙 드는 놈들’로 바뀔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렇다. 나에게도 아들들이 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17명이나…. 나를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버이날 깜짝 이벤트의 감동이 가실 때쯤, 드디어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늘 그렇지만 성적표를 받아 보는 날은 죽을 맛이다. 이번 중간고사는 좀 기대를 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눈에는 전부 형편없는 성적이었다. 3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엉망이었다. 심각한 학생도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회의실로 모이게 했다. “아무리 수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내신을 이렇게 소홀히 해서 되겠느냐?”며 질책했다. 그리고 심각한 학생에게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우리 집이 네가 공부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부모님과 상의해서 학교기숙사로 자리를 옮겨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했다. 학생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조처였으리라. 베드로관을 떠나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때 고3 두 명이 개인면담을 요청했다. 비오와 안토니오였다. 면담의 요지는 동생에게 한번만 기회를 더 달라는 것이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자신들이 책임을 지고 동생의 성적을 반드시 올려놓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비오는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자신도 예전엔 그랬다고. 고등학교 들어올 때 전교꼴찌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상위권에 있으니, 공부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동생한테 도움이 될 거라며 매달렸다.
과묵한 안토니오도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번갈아가며 개인과외를 하겠다고 했다. 그 때 내가 물었다. “만약 내가 너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험성적에도 이번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면 너희들은 어떻게 책임질래?” 그러자 한참 생각하던 녀석들이 “그 땐 저희들도 함께 베드로관을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참 멋진 놈들이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지려 하고 모두가 하나라는 형제적 유대의 끈으로 똘똘 뭉쳐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이런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베드로관의 아이들은 모두가 사제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꿈을 갖고 산다는 것, 청소년들에게 이보다 더 큰 자산이 어디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이다. 꿈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꿈꾸기 시작한 이 꿈이 얼마나 훌륭한 꿈인지,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많은 노력 가운데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강론한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이 3년의 베드로관 생활을 마치면서 ‘하느님과 함께 살고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참 좋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우고 이곳을 떠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일을 감히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다행히도 올해 초 신학대학에 6명 모두가 전원 합격하였다. 6명 모두 중학생 때 면담하고 선발된 학생들인데, 많은 우여곡절 가운데에서도 성소의 꿈을 간직하여 진학하였다. 6명, 이 6명의 성소를 위해 3년을 함께 생활하였다. 숫자로 보면 얼마 안 되는 숫자이지만 나에게는 600명, 6000명 이상으로 다가온다. 혹시 아는가, 이 아이들 가운데 까까머리 김수환 소신학생이 추기경님이 되었듯이, 우리나라의 추기경님이 되고 교황님이 될 아이가 나올런지!
4년 6개월 전 베드로관에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생각이 난다. 베드로관이 어떤 곳인지 몰라 발령장에 적힌 전임 신부님을 찾아 전화하면서 도대체 베드로관이 어떤 곳인지 여쭈었다. 그땐 참 서글펐다. 본당도 아니고, 좁은 건물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고등학생들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그러나 첫날 학생들과 만나 미사를 봉헌하면서 생각은 바뀌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맞아. 나도 이 아이들과 같은 고등학생이었을 때 사제가 되겠다고 생각했지.’

그 날 이후 자주 25년 전, 성소를 갈등하며 적어 내려갔던 일기장을 꺼내 읽으면서 눈물도 훔쳤다. 그러면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첫 마음으로 사제생활을 시작하라고, 힘들고 아프고 지쳤던 시간들은 다 내어놓고 주님의 길을 따라 나서던 첫 마음의 열정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그래서 이곳 베드로관은 미래에 신부님이 되고자 하는 아이들의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가는 곳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도 똑같이 성소의 첫걸음을 기억하며 활기차게 사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곳이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집 아이들은 성가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한다. 베드로관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가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아이들과 미사를 봉헌하며 아이들의 성가를 들을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아이들을 봉고차에 태우고 운전할 때이다.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부르는 성가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지금 이 아이들과 함께 천국으로 운전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황홀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랑 속에 형제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형제의 손 맞잡고,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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