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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새 사제들을 바라보며


하성호(사도요한)|신부, 교구 사무처장 겸 월간 <빛> 잡지 주간

주님의 제단 앞에 엎드려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사제로 탄생하는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선배 사제로서 꼭 바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죽는 날까지 자신이 주님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려 노력하고, 그래서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달라는 것이다. 주님이 당신의 사제들에게 바라는 바람도 이것이고, 서품식 날 환호성으로 새 사제들을 축하하는 교우들의 바람도 이것이다.

하지만 막연한 각오로는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제라 해서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진 이들이 아니다. 그들도 세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사제도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어떨까 싶다.
“옛날에는 사진을 찍을 때 사진사가 흑포를 뒤집어쓰고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러다가 휴대용 카메라가 생산되면서 사람들은 쉽게 사진을 찍게 되었고, 이윽고 자동카메라가 나온 뒤에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서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이젠 디카(디지털 카메라)로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는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삭제를 하면 되니까….”

흑포를 뒤집어쓰고 사진을 찍던 시대의 인간관계가 ‘소중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존경하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던 세상이었다면, 디카로 사진을 찍는 오늘 날의 인간관계는 ‘내 맘대로’, ‘대충대충’, ‘함부로’ 대하는 인간관계가 대부분을 이루는 세상이라 하겠다.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존경심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실용성이나 편리성에 따라 인간관계를 가지는 세상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런 시대의 변천 속에 길들여진 청년들이 이제 사제가 되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새 신부들이 신자들을 대할 때 디카를 든 사람처럼 ‘함부로’, ‘자기 맘대로’ 신자들을 대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괜한 노파심이면 좋겠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신자들은 사제가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길 바란다. 신자들의 그 바람에 어디 잘못된 점이라고는 그야말로 일점일획도 없다. 단지 그런 신자들의 바람을 이루어주지 못하는 사제 자신의 부족함만이 늘 미안할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갈수록 ‘섬기는 리더십’을 외친다. 섬기는 사람만이 참된 리더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다. 섬기는 리더의 요청과 외침은 예수님의 요청과 외침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5-26)

지난 6월 19일 예수 성심 대축일부터 1년간 교황님께서는 사제들의 쇄신과 성화를 위해 ‘사제의 해’를 선포하셨다. 만나는 이들을 존경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만나기 위해 사제에게 요청되는 것은 사제가 결국 자신을 낮춤으로써 거룩해지는 외길을 기꺼이 선택하여야 한다는 물러설 수 없는 거룩한 요청 바로 그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