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교실이야기
사랑 받기 원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박상준(가브리엘)|신부, 성의여자중학교 교목실장

“신부님 오늘은 무슨 수업해요?”, “신부님은 왜 결혼 못해요?”, “신부님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궁금증 섞인 재잘거림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어느덧 4개월. 작년까지 효성여고에서 3년을 살면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만 적응되어 있던 저에게 중학교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입니다. 제가 느낀 중학교는 고등학교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중학교는 학년간의 차이가 너무 커서 얼굴이나 행동만으로도 몇 학년인지 알아낼 만큼 학년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창 자라는 성장기이니까 한 해, 한 해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3학년은 벌써 숙녀 티가 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내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해도 잘 이해하고 잘 알아듣습니다. 수업도 가장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3학년은 외모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책상 위에 아예 거울이 놓여있는 아이들도 있고, 또 책상 위에 거울이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손거울을 따로 꺼내 틈틈이 두 거울을 동시에 보면서 머리를 쉴 새 없이 만지는 학생도 많습니다.

2학년은 한참 예민해져 있을 시기입니다. 사춘기의 정점이라고 할 정도로 예민하고 나름대로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수업을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질문을 하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수업에 관심을 잘 보이지 않는 학생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학생들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2학년 수업을 들어갈 때는 학생들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많이 씁니다.

1학년은 아직 초등학생의 티를 벗지 못한 햇병아리 같은 아이들입니다. 온갖 궁금함으로 무장해서 때로는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가끔 묻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아주 진지하게 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습니다. 한 번은 학생들의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었는데, 거기에는 취미, 별명, 별자리 등등 수십 가지의 질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아주 진지하게 적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슬쩍 봤더니 다른 것은 잘 적어놓고 가족관계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가족관계 : 좋다!”





이처럼 학년마다 큰 차이가 있는 아이들이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어느 학년이든 아이들은 사랑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또래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무리 입시가 중요해지고 성적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부분은 교우관계로 인한 문제입니다. 심한 경우 교우관계 때문에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참 많이 아픕니다.

사실 저는 신부가 될 때부터 학교사목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 사제가 된 성소동기도 학생들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교리교사를 할 때 주일학교 학생들을 보며 생각했지요. ‘한참 예민한 사춘기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하느님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학생들이 이 중요한 시기를 힘들어 하면서 보내지는 않을 텐데, 오히려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되어 학생들에게 그 사랑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제 성소동기였습니다. 그것은 비단 주일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들도 좀더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교에 있어보면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학생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한 친구는 피부도 하얗고 예쁘장한 얼굴에 그래서 약간 새침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 학생을 보면서 자기 자식 귀하게 여기는 집에서 공주같이 자란 딸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란했던 가정은 그 아이가 친척집에 간 사이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동생은 장애를 입어 순식간에 기초수급대상자가 된 것입니다. 전교에서 상위에 있던 성적은 그런 사정으로 인해 조금씩 떨어졌고 학원을 다닐 수 없어 속상해 한다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어두운 구석하나 없이 꿋꿋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워진 환경 탓에 철이 빨리 들었는지 생각도 깊고 선생님들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애정을 많이 쏟고 있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늘 그 반에 수업을 들어갈 때면 마음이 아릴 때가 많고 맨처음 선입견을 갖고 봤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학교는 또 하나의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때로는 갈등하고 고민하는, 어른들과는 다른 학생 자신들만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을 알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잘 하는 아이나 잘 하지 못하는 아이나 모두 사랑해야 할 내 아이들이고 보듬어야 할 내 아이들입니다. 때로는 야단도 치고 질책도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키워갈 것입니다. ‘교사의 기도’처럼 언젠가 내가 가르친 학생들과 함께 천국에서 별처럼 빛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신부님, 왜 우리는 노래 안 불러줘요?”, “신부님, 우리도 간식 사줘요~!”,“신부님, 왜 우리 수업 들어오는 날만 출장가세요?”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