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품 받은 새 신부님들이 수녀원에 미사를 하러 왔을 때 새 신부님 강론 중에 <첫 마음>이란 글을 읽어주시면서 “제가 출신본당에서 첫 미사를 할 때 할머니들한테 저는 결혼식 날 입은 이 웨딩드레스(수단)를 맨날 입을 수 있게 되었으니 열심히 입다가 이 웨딩드레스가 수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신부님들이 사제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듯 박창수 몬시뇰, 아니 할배도 웨딩드레스를 수의로 입고 ‘이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처럼 하늘 본향에 드셨겠지요?
박 몬시뇰께서는 27년 남짓한 세월동안 우리 수녀원에서 함께 생활하셨는데, 아마도 그간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숱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지나간 시간들이 새록새록 되살아옴을 느낍니다. 많은 여운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신 몬시뇰! 그렇게 쉽게 떠나실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1982년 몬시뇰께서는 처음에 암 수술을 하시고는 휴양 겸 지도신부님으로 대구 남산동 저희 수녀원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제가 수녀원 입회를 했으니 우리 반 자매들과의 인연은 더욱 각별 했었지요. 수녀원 직속 후배로 몬시뇰을 떠나보낸 아쉬움을 달래면서 하늘에 계신 몬시뇰께 이 글을 띄웁니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몬시뇰께서는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째 그래 안 늙으시고 똑같네요.”라고 말씀드리면 기분이 좋아서 흐뭇한 표정으로 빙긋이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몬시뇰은 삶의 모든 이야기를 저희에게 자주 들려주시어 저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태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한평생 그리며, 어머니를 위해 미사를 드리려고 신부가 되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성소 이야기를 길게, 아주 길게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그리고 부제품 받은 날 밤에 딱 한번 엄마를 꿈에 보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눈물을 흘리셨고 가만히 듣고 있던 저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제가 “몬시뇰님은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내 命(명)까지 다~ 받아서 오래 살다 오너라.’며 지켜주시기 때문에 “디기 오래 살 낍니다.”라고 했던 말에 어린이처럼 행복해하시던 모습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몬시뇰께서는 책임감과 성실함 또한 대단하셨습니다. 수녀원 새벽미사에 지각하신 기억은 거의 없고, 몇 번이나 밤새 복통으로 아파하시면서도 미사를 집전하셨지요. 오히려 우리가 더 용쓰면서 미사에 참석했던 기억과 함께 마음속으로 ‘저래 밤새 고생할 만큼 아프셨으면 아프다 하고 나오시지 말지….’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답니다. 아마도 지도신부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평소의 성실한 모습 그대로였다고 생각합니다.
미사 후에는 고해성사를 주셨는데, 가끔씩 성소에 힘을 잃어가는 수련수녀들이 성사를 볼 때면 다독여주시는 몬시뇰 덕분에 새롭게 힘을 얻어 생활하는 수련자들이 많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몬시뇰을 만나러 수녀원을 출발하면서부터 울며 간 자매들도 있고, 몬시뇰을 만나서 서로 눈물을 흘리며 한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을 나누곤 하였지요.
살아 계실 때 늘 하시던 말씀 중에 “내가 암 훈장 여러 개 갖고도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수녀원 된장 때문이야. 그래서 된장 먹고 암 이긴 투병기를 써야쟤.”라며 큰소리치시던 몬시뇰. 마지막으로 입원하셨을 때 “몬시뇰, 암 투병기는 언제 완성해서 책으로 나와요?” 했더니 “지금까지 다 써 놨어. 이번에 아픈 것 다 나사가 같이 보태서 완성할 기라.”며 자신만만해 하셨는데, 당신 계획과 다르게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하느님이 부르시는 그 시간에 세상 것 다 접어두고 서둘러 가시니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평소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지극하셔서 병실에서도 당신이 늘 앉으시는 옆 소파에 앉으려하면 ‘여기는 앉지마, 성모님 자리야.’하던 모습. 어느 여름날 우리 수녀들이 입는 여름 수도복 회색 천으로 수단을 지어드리니 입으시자마자 우리와 동색이 되었다고 행복해 하시던 모습. 사람에 대한 연민과 정이 많으신 분이라 그저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당신 아픈 것을 설명하고 싶어서 목을 뚫어 놓았는데도 말씀을 하셔서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제가 나서서 “몬시뇰, 하고자 하시는 말씀 제가 대신 설명을 할 테니 그냥 계시이~소.” 하고 설명을 한 뒤 “더 빼고 보탤 것 없이 잘 했지요?”하면 웃으시며 흡족해 하시던 모습. “내가 죽으마 수녀들이 까마이 기도해주러 올 꺼 아이가?”라며 신나신 표정을 짓던 모습들….
우리 몬시뇰께서 평소에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 수녀원의 모든 수녀님들, 연세 많으신 수녀님들까지 장례미사 참석을 위해 일찌감치 계산성당에 가서 빼곡히 앉아 기도하는 것 보시고 하늘나라에서 흐뭇하셨지요? 평소에 기도 욕심이 많으셨던 몬시뇰, 우리 수녀들 기도 다 받고 가시려고 월요일 걸치게 떠나 본당수녀님들 기도까지 다 받으셨으니 진짜 흐뭇하시지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열정을 바쳐 사셨기에 삶이 힘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저 보듬으시며 남의 일을 내 걱정, 내 일처럼 마음을 쓰시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을 몸으로 사신 참 사제이신 몬시뇰, 당신은 우리의 큰 버팀목이셨습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가 너무 허전하고 그립습니다. 매일 미사를 마친 후 성무일도서를 옆에 끼시고, 묵주를 들고 수녀원을 한 바퀴 돌아서 사제관으로 가시던 모습을 이제는 뵐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샬트르 성바오로회 수녀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아시지요?
요한 몬시뇰의 축일을 앞두고 우리 수련원 가족들이 몬시뇰께 한 마디씩 마음의 글을 준비하던 중에 하늘나라로 가셨기에 오늘 영명축일에 당신 묘위에 저희 마음 모아 완성된 사랑의 편지를 올려 드리오니 하늘나라에서 읽어보시고 기뻐하시는 모습 그립습니다.
이제 천국에서 어머니 만나 기뻐하실 몬시뇰을 생각하니 저희들의 마음도 기쁩니다. 몬시뇰 보고 싶어 그리움이 쌓일 때면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기도 안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몬시뇰! 당신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주님, 박창수 요한 몬시뇰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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