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 <가시고기>라는 제목의 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려내는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었다. 작가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를 극화 한 것이다. 그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정보석이라는 배우를 무척 좋아한다. 정보석이라는 배우가 무슨 역을 맡든 간에 그는 언제나 나에게 <가시고기>를 생각하게 한다.
실제 가시고기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다. 아빠 가시고기는 엄마 가시고기가 산란을 잘 하도록 물풀 따위로 집을 마련하고, 엄마 가시고기가 그 안에 알을 낳으면 새끼가 부화하여 집을 떠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알과 새끼들을 보호한다. 이 기간 동안 아빠 가시고기는 먹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알과 새끼를 먹으려 덤비는 다른 물고기와 싸우느라 온 몸이 물어뜯기고 주둥이는 만신창이가 된다. 아빠 가시고기의 생의 마지막은 더욱 감동스럽다. 부화한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전부 먹이로 내어준다.
언젠가 로마에서 유학을 할 때 성서학 교수님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물고기의 상징을 설명해주실 때 받았던 그 감명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물고기는 숯불 위에 구워져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구수한 맛의 음식이 된다. 자신의 희생과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그 물고기가 바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교수님의 설명이었다.
가시고기 이야기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물고기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긴 여운을 남겨준다. 그 여운은 “나도 그렇게 살아봤으면….”하는 것이다. “살아봤으면” 뒤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나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참으로 좋으련만!”이라는 희망과 체념이 동시에 묻어나는 말을 생략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또 한 명의 ‘영등포 슈바이처’ 신완식 요셉의원 의무원장” 이야기가 기사로 실렸다. 행려노숙자를 위해 1987년에 무료진료 병원을 세운 ‘쪽방촌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이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신완식 원장이 자원하여 그의 뒤를 잇기로 하였다. 신완식(59세) 원장은 여의도 성모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자 가톨릭중앙의료원 세포치료사업단장이라는 중역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요셉의원 의무원장’이라는 무보수의 자원봉사라는 낮은 곳으로 임하였다. 선우경식 원장이나 신완식 원장 같은 분들은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가는 가시고기 아빠와 같은 분들이다.
가시고기와 요한복음의 물고기 이야기가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의인 열 명이 없어 심판을 받았다는 소돔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창세 18,16 이하 참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생각해본다.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를 지배하는 큰 정신은 있기 마련인데, 가시고기와 요한복음에 나오는 물고기 이야기가 이 시대를 움직이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본정신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