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기부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미국 뉴욕에서 한 무리의 청년들이 볼리비아를 다녀 갔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때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오합지졸에 거의 대다수가 자신이 진정 원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반강제로 모여든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또 하루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멀리 떨어진 시골 공소에 가서 공소 페인트 칠도 하고, 사탕수수 밭에서 직접 사탕수수를 베어 보기도 했습니다. 평소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 그 많은 일들을 하고 나서 슬슬 지쳐갈 만도 한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아이들의 얼굴엔 더 생기가 돌고 재잘거리는 소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날이 다가올수록 가기 싫다는 둥, 그냥 여기 머물겠다는 둥 반 진심의 농담도 하곤 했습니다.

참 많은 물건들도 가져 왔습니다. 공이며 신발이며 학용품들을 잔뜩 가져와서 모두 기부하고 갔습니다. 게다가 기부하려고 가져온 것들이 아닌 물건들도 스스럼  없이 내어 놓고 갔습니다. 그럼에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맞춰 입고 온 티셔츠에는 영어, 한글, 스페인어로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 7)”














‘기부’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이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온 한국인 친구들은 적지 않은 기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이네들은 그보다 더 소중한 기부를 하고 또 반대로 엄청난 기부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내리신 명령, 곧 그들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것을 두고 딱히 칭찬하는 이가 없듯이 이런 기부, 자선의 행위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주변에 아무도 공부하는 학생이 없는 가운데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학생은 칭찬을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부’가 칭찬받을 일로 손꼽히는 것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부는 단순히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힘든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업가가 신문에 이름을 내기 위해 라면박스를 가져다 놓고 사진을 찍는 것처럼 단순히 가서 돈을 흩뿌리고 오는 것은 결코 참된 기부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뿌린 돈은 그들의 마음을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고 그들의 삶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 결국에는 점점 무너져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볼리비아에 찾아온 한국인 청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 ‘마음 나누기’를 잘 체험한 듯싶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시골 공소 신자들에게 또 본당 청년들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고 또 반대로 볼리비아 사람들이 나눠주는 마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서로 체험했던 것을 나누는 자리에서 아이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 곳 아이들에게서 받은 작은 편지에 감동하는 친구, 볼리비아에 선교를 가라는 부모님에게 화를 내며 가기 싫다고 떼를 썼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자신을 반성한다는 아이, 뉴욕에서 호사스럽게 살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힘들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한다는 아이 등등 여러 가지 속내를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곳 볼리비아에 선교사제로 살아가면서 많은 ‘기부’들을 받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제 이 글을 읽으신 많은 신자분들은 그저 액수를 따지는 기부가 아닌 진정 마음으로 다가오는 ‘기부’를 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은전 한 닢의 정성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