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공식적으로 1784년 이승훈의 세례로부터 비롯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그전에도 당시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한문 교리서들을 접하고 천주교 교리에 대한 비판과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이벽을 비롯한 십여 명의 선비들이 주어사와 천진암에 모여 천주교 교리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의 다른 교회들처럼 선교사들의 직접적인 선교에 의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 북경에 가서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으며, 조선에 돌아와 동료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스스로 신앙공동체를 설립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세계 교회사상 유일하고 독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보편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며,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로 탄생한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초창기부터(1785년) 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그 이후 100년에 걸쳐 큰 박해가 여러 번 있었다. 즉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등이 있었으며, 이 때 순교한 이들이 만 명을 헤아린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처럼 믿음을 지키고 증언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한국 초대 신자들의 거룩한 순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또 한편으로 한국의 초대 신자들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성직자 영입 운동, 교리교육 활동, 사회복지 활동, 복음전파 활동 등 그들의 신앙활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눈부시게 전개되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사건으로는 교회창설(1784년), 한국교회의 첫 사목자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입국(1795년), 조선대목구 설정(1831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의 입국(1835),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의 사제서품(1845), 한불수호조약으로 인한 신앙의 자유 획득(1886년), 교계제도의 설정(1962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1981년), 한국 천주교회 설립 200주년 기념행사 및 한국의 순교자 103위 시성식(1984년),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개최(1989년) 등이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오늘날 4천 2백여 명의 신부와 5백만 명 이상의 신자 수(2008년 12월 31일 현재)를 헤아리며, 인권운동, 정의평화운동, 사회복지활동, 문화사업, 생명보전운동, 자연환경의 보호운동 등을 전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한국사회 안에 공존하고 있는 개신교, 불교, 유교, 민족종교 등의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협력하여 인간성의 회복과 인권의 신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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