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은 항암치료 때문에 긴 머리를 감지도 못한 채 녹슨 철사처럼 뒤엉켜있는 젊은 아가씨의 머리를 감겨준 적이 있었어요. 머리를 감기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머리카락이 쑥쑥 빠지더니 거의 다 빠지더군요. 순간 소리죽여 흐느끼는 환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고 저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몹시 미안했어요. 그러자 곁에 있던 환자의 엄마가 ‘안 그래도 머리카락을 잘라주려고 했었다.’며 오히려 저를 위로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아직까지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말기암 환자들의 모습을 매일 지켜보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대구 파티마병원의 호스피스자원봉사자들. 그들을 만나러 대구 파티마병원 서관 4층에 자리한 무지개병동을 찾았다.
‘무지개병동’이라 이름 붙인 파티마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에는 1인실(2개), 2인실(1개), 5인실(2개) 병실에 모두 14개의 침상이 준비되어 있다. 이 병원 호스피스자원봉사회(회장 : 석민자 매임데레사)의 호스피스활동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대략 4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환자들을 돌봐주고 있다. 또 매주 목요일에는 원목신부의 배려로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을 위해 호스피스봉사자들이 직접 따뜻한 밥상을 차려 가족실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나눈다.
 
올해로 5년째 호스피스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호스피스자원봉사회의 석민자(매임데레사, 신암성당) 회장. 석 회장은 언제나 환자와 같은 마음으로 굳게 닫힌 환자들의 마음을 열고 환자들이 안고 있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호스피스병동은 환자들이 자신의 한 생을 마무리하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환자들은 대화를 통해 응어리진 마음속의 용서도, 사랑도, 미움도 다 풀어내고 마침내 그 마음을 예수님, 성모님 사랑 안으로 모아들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말기암 환자들의 죽음 길을 배웅하는 우리 호스피스봉사회원들은 40-60 후반의 자매님들이 대부분이고 그 중 형제님들도 몇 분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호스피스활동 중에 대세를 받는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서 대세를 받을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해오고 있는 대세자 교리담당 손현숙(율리아, 신암성당) 봉사자. 그녀는 “환자들의 체력이 있을 때 교리를 가르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생을 잘 정리하고 떠나갈 수 있도록 모든 봉사자들이 유도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대세를 받고 떠나가면 슬픈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곤 하지요.”라고 들려준다.
호스피스자원봉사자들은 목욕봉사에서부터 머리 감겨주기, 발마사지 해주기, 말벗 되어주기, 기도 해주기, 성가 불러주기, 정원 가꾸기, 대세(비상세례)받도록 도와주기, 사별가족 위로하기, 장지수행, 음식봉사 등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해오고 있다.
파티마병원의 호스피스활동은 1992년 산재형 호스피스로 시작, 2000년 호스피스병동이 신설되면서 더욱 체계화되었다. 병동 신설과 더불어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이해숙(카리타스) 간호과장 수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요셉실(임종을 돕는 공간)이야말로 참으로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된 공간에서 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환자 스스로 행복하고 사랑받았다는 것을 느끼고 떠나도록 돕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다른 환자들에 대한 배려에서 마련된 공간.”이라며 요셉실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요셉실은 병원의 수익성은 배제하고 오롯이 임종자의 선종(善終)을 위한 생의 마지막 공간인 셈이다.
지난 5월 28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는 암 극복 캠페인 ‘통증을 말합시다’ 행사가 보건복지가족부 주최로 대구·경북지역 병원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대회에 참가했던 무지개병동의 최정란(클라라) 관리 수간호사는 “암 환자의 통증도 호스피스완화 의료기관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통하여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환자들이 암으로 고통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캠페인을 벌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티마병원 호스피스자원봉사회 석민자 회장은 “우리 호스피스봉사자들은 앞으로도 몸과 마음을 다해 말기암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볼 것.”이라고 말하며 “힘이 닿는 동안 계속해서 호스피스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호스피스자원봉사자들은 자기자신이 만족해야 환자도 기쁘고 즐겁다는 생각으로 오전 10시면 어김 없이 파티마병원 무지개병동 호스피스봉사자실에 모여 환자들의 영적치유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온종일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하루 일과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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