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공소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브레차 10(Brecha diez)’이라는 그 공소에 미사를 드리러 갈 때면 늘 동참하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헌데 그 날은 어쩐 일인지 함께 가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열두 살 먹은 자그마한 소녀로, 듣자 하니 그 아주머니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어제부터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베니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는데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엄마가 아이를 코차밤바에 있는 고모네 집에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모의 구박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늘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해야 했고 그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의 구박도 너무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모가 아이를 홀로 산타 크루즈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 버렸는데 길도 잘 알지 못하는 그 곳을 찾아가는 중에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고 합니다.(듣고 있자니 실은 고모에게서 버려진 듯합니다.) 그렇게 시골길을 헤매던 것을 어제 오전에 일을 하러 지나가던 인부가 발견해서 지금 머물고 있는 아주머니의 집에 맡겨 놓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너무나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어제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해서 이런 내용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였습니다. 공소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에도 소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거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너무나 아려 왔습니다.
이번엔 본당에 복사단을 하는 한 여자아이 이야기입니다. 오빠 한 명에 밑으로 6명의 동생들을 둔 이 친구는 최근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아버지 또한 마땅한 직업도 없이 늘 밖으로만 나다닌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가진 작은 바람은 학교만이라도 정상적으로 다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학교에 갈 시간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평소에 이 친구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어두움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공소에서 복사단활동을 하는 한 남자애는 동생이 5명입니다. 아빠는 일용직 인부이고 엄마는 가정부일과 세탁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주일에는 우연찮게 주변 친척들이 자기네 집을 다 방문을 했는데 준비한 음식을 모두 함께 나눠 먹느라 먹을 것이 부족해서 점심을 조금밖에 먹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재미나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전했습니다. 비록 이렇게 물질적으로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는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소개한 내용은 수많은 볼리비아 가정의 현실 가운데 제가 체험한 극히 일부분의 경우에 불과합니다. 이 밖에도 더욱 다양하고 비정상적인 모습의 가정, 또 우리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의 가정도 존재합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과연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볼리비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가족이란, ‘마음의 안식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생물학적으로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가족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또 기쁘고 행복할 때에 그것을 언제라도 함께 나누어 줄 수 있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녀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대부분은 물질적인 부와 세상의 명예가 그 기준이 되곤 합니다.)으로 자녀를 판단해버리고 자녀가 느끼는 작은 행복을 빼앗아 가버리는 부모님들, 가족 구성원들이 아무런 소통이 없이 잘 꾸며진 아파트 안의 각자의 방에서 신경을 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은 비록 생물학적으로는 ‘가족’이라 분류될 수 있어도 진정한 가족이라 부르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가 힘들 때 조용히 다가와서 내 등을 토닥여주는 친구, 내가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 털어놓고 싶을 때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고 내가 기쁨에 가득 차 나누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볼리비아에 있는 동안 그런 가족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함께 일하는 신부님들과 함께,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 살바도르’ 본당 공동체와 함께,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이들과 함께 이런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아 주기보단 받으려고만 하는 욕심꾸러기 나이지만 하루하루의 소박한 기도 안에서, 또 언제나 고해성사를 통해 나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는 주님 안에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기꺼이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가족, 가정의 위기라는 문제는 일찍부터 화두가 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헤로데의 박해, 이집트 피난과 같은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향한 신실함’이라는 끈으로 굳게 하나로 묶여 있었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마음에 두고 다가오는 시련들을 신앙 안에서 잘 이겨낼 수 있다면 가족 안에서 다가올 수 있는 그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을 맞이해서 성가정의 이런 고귀한 은혜를 청하며 저녁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묵주기도를 드려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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