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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용기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얼마 전 제가 담당하는 빌랴 플로르(Villa Flor : 꽃동네)라는 공소의 축제날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성모신심은 여간한 것이 아닙니다. 공소에 도착하니 멀리서부터 쿵짝거리는 밴드 소리와 함께 축제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공소 안으로 들어가 제대 위에 미사 준비를 마쳐 놓고 사진기를 들고 나가 보았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은 무희들, 그 뒤를 따르는 청년들과 밴드들, 이어 고산지역 전통 복장을 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대로를 가득 채우고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덩달아 흥이 나기는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알지 못할 축제, 왜냐하면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일 년에 한 번 미사에 나올까 말까 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귀를 울리는 밴드의 악기 소리가 잦아들고 마침내 사람들이 공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간만에 빈틈없이 공소 자리를 빼곡히 채운 모습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이 날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는 마르코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과연 축제를 즐기러 온 이 많은 이들, 미사는 안중에도 없는 이들에게 이 껄끄러운 복음 말씀을 어떻게 하면 합당하게 전해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처음 오신 분도 많으시네요. 공소 축제를 위해 모여주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저 앞의 십자가 보이시죠? 수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나서야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이 분밖에 없습니다.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은 이 축제를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현세적인 것들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영혼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죽음으로 부활을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세의 삶의 축복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우리들, 과연 우리들의 부활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시작된 강론, 걱정이 많았지만 내 안에서부터 알지 못할 힘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반은 건성으로 미사에 참여하던 이들의 시선이 점점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멀리 동양에서 날아와 아직 말도 어설픈 이 조그맣고 젊은 신부의 말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걱정하던 바와 달리 강론은 무사히 끝났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언짢은 모습보다는 침묵 중에 평화로이 성찰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선포하실 때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인 면, 즉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접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두려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특히 ‘사제의 해’를 맞이한 우리 사제들이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양들을 이끄는 목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성령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에 일어나는 손실은 한 양이 길을 잘못 걸어가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유혹들이 엄습해오고 과중한 십자가가 어깨에 걸리더라도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겨내지 못할 십자가를 허락하시는 분이 아닐 뿐더러 그에 합당한 힘과 용기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11월 위령 성월을 맞이해서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을 바라보며, 일상의 수난 가운데에서도 성령의 힘 안에서 꿋꿋이 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