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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성월에 떠오르는 얼굴


석민자(매임데레사)|신암성당

하늘가는 문과 마음의 문엔 손잡이가 없다든가. 화장장에서 한 줌 재가 되어 나온 희야의 뼛가루를 안고 납골당으로 향하던 날은 쨍하도록 하늘이 맑아 있었다. 혼백은 화장장에서 떠나보내고 한줌 재로 남은 시신을 항아리에 담아 안고 차에 올랐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이리 주검을 대할 적이면 늘 마음이 적요하다.

얼마를 살아야 다 살았다고 할지는 몰라도 분명 서른넷은 아닐 것이다. 네 살배기 딸을 육순의 친정부모에게 맡겨두고 가는 길이 아니라고 해도 그 길은 아닐 것이다. 의학적으로 숨이 멎고도 그리 오래 등이 식지 않았음도 못다 한 이승이 발목을 잡아서이리라. 삼 년여 동안이나 투병을 했고 자신의 상태를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거부하던 그 바탕엔 눈물이듯 자식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희야, 희야~! 이 어린 것을 두고 니가 가믄 날더러는 우짜라는 말이고? 하느님! 하느님!”

모친이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통곡을 한다. 슬픔이 지나치면 눈물도 말라버린다던데 저리 소리 내어 울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겨야 될지 모를 일이기는 하다. 기왕 불가마 속에 들었던 몸, 뼛가루도 훠이훠이 뿌려버렸으면 싶었다.

남들은 다 있는데 자신에게만 없는 것이 있다면, 그 대상이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면, 비록 손잡이마저 없는 한 뼘 공간일지라도 흔적을 남겨 두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자식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일이 아니냐고. 벽속에 갇힌 채로 산화되어야 할 몫은 어디까지나 희야가 안고 가야 할 업보이겠거니 치부해두자고.

성장을 멈춘 구월의 들녘은 다소곳이 옷깃을 여미고 논머리에 있는 저수지에도 가을은 깊게 내려와 있었다. 물도 저렇게도 고요할 수가 있을까. 끝이 어딜까 싶게 잠겨있다. 젊디젊은 나이에 어린 자식까지 두고 가는 걸음이 반듯하다면 사람이겠는가. 상여도 없이 가는 길, 구름이듯 흰 국화꽃으로 에워싼 꽃상여에 무지개 같은 만장을 휘날리며 간다고 해도 서러움은 서러움대로 남을 것을, 상주 하나 없이 가는 길에 햇살은 또 어쩌자고 저리도 찬란한지.

나비처럼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딸아이는 오늘이 뭘 하는 날인지를 알지 못한다. 삼 년여를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을 했으니 그 아이 기억엔 저를 키워준 할머니만 남아있을 것이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투병생활. 두 손 마주 포개 배 위에 얹고 반듯이 누운 자세로 밤을 보내고 낮을 맞던 희야. 등 돌린 남편으로 인해 마음 다치고 사위를 마뜩찮아 하는 모친등살에 상처가 덧나고, 그 사이에서 숨이 차오르면 가만가만 가슴팍이나 두드리던 희야.

자식을 위해서라도 남편을 용서해주라는 말에 내내 펴고 있던 두 손을 도로 거머잡던 희야. 결국은 남편도 펴주질 못하고 자신도 펴지를 못한 채 그렇게 거머잡고서 갔다. 어린 자식도 그렇게 거머잡고서 갔다.

죽음은 어떤 것이 됐건 고통과 회한이 따른다. ‘화타’라 해도 회한까지는 어떻게 할 재주가 없던 것을. 호스피스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람들. 외려 못다 살고 가는 축에서 더 순순함을 본다. 집착이란 살아온 세월과 비례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입을 열기까지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열리고 나면 꾸리에 감긴 명주실이다. 유년 적부터 끌어내야 별 무리가 없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유년은 그리움이고 고향과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걱정 없던 시절, 마냥 건강하고 푸르던 시절을 얘기하는 동안은 표정도 아이같이 유순해진다. 더께가 고염나무 밑둥만 같은 얼굴에 번져나는 천진한 웃음은 해탈이다.

속이 휑할 정도로 쏟아내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등허리가 시려진다.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다음번에 와보면 침대가 비어 있거나 또 다른 환자로 채워져 있기 십상이다. 들어왔는가 싶다보면 떠나가고. 오래 머물기를 바랄 일이야 없다고 해도 빈자리는 어쩔 수 없이 시린 마음이게 한다. 한 세상을 살아낸 노인들은 그나마도 느슨한 마음일 수가 있지만 못다 산 주검 앞에선 매번 조여드는 마음이 된다.

자기가 만들어 둔 문 안에 저 스스로를 가둬 놓고 사는 동물이 사람이라고 했던가. 평생을 문에 매달려 살아 왔으면서도 정작 세상 밖으로 나가는 문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하느님의 발치에도 닿을 수가 없는 만물의 영장이다.


* 석민자 님은 대구파티마병원 무지개병동 호스피스자원봉사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남수필 신인상, 신라문학 수필부분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수필문예>, <영남수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