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정 떼고 정 붙이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본당 사제는 정 떼고 정 붙이기를 수없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띤 사람이라, 사제로 살면서 이 일도 보통 힘든 일은 아니다. 한 본당 사제가 한 공동체와 정 붙이며 살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4년 전, 하나의 정겨운 공동체를 콧날이 시큰해지며 떠나와 이곳 낯선 가천 공동체에 와서 살게 되었다. 외적인 환경은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했지만, 가천 가족들의 신앙심, 특히 어르신들의 신앙은 매우 깊은 곳이었다. 박해로 다져진 신앙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당시(2005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독일 신부님들의 노력으로 본당이 설정된 지 45년째, 그중 30년은 청소년 교육원 사업 뒷바라지에 힘쓴 본당이었다. 선배 신부님들과 본당 가족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제는 본당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본당 내적 외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목 목표를 정했다. ‘하느님의 집을 정겹고 아름답게’로 정했다. 내적으로 더 정겹고, 외적으로 더 아름답게 하고 싶었다. 그 전에 정겹지 않고,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내적으로 정을 붙이기 위해 여러 일을 시도하였다. 본당 가족들이 하느님과 정을 붙이도록, 미사 강론은 성경 말씀 중심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워낙 말재주가 없어, 재미는 없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어 겸허히 인정하며 더 노력해야지 하며 꾸준히 그 원칙을 지켰다. 본당 수녀님과 함께 성경공부반을 열어 가족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다. 지금도 갓 영세한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다. 좀 더 심화된 성경학교도 열어 가족들의 신앙을 돕고자 애썼다. 성경쓰기도 함께 했다. 피정도 하고, 기도모임도 하고, 그런 노력들이 조금씩 조금씩 가족들이 하느님과 더욱 정을 붙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갔다.
또 내가 본당 가족들과 정을 붙여야겠다 싶어서, 본당 어르신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로선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익숙했고, 더 좋았다. 어르신들도 아들처럼 나를 대해 주셨다. 미사 마치고 나면 가족들과 손을 잡기로 했다. 손과 손이 만나면 마음과 마음도 통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잘 안 되지만 많이 웃으려고 애썼다. 태생적으로 부끄러움이 많고, 부드러운 얼굴이 아니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해 받기 십상이다. 화난 얼굴이라고….
전임지에서 선배 신부님께 배워 한 일 중에 하나가 가족들 일터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참 보람 있었던 일이라서, 이곳에서도 음료수를 자전거에 싣고, 일터 방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핑계이겠지만 워낙 본당 관할 구역이 넓어(본당 관할 구역을 가로지르려면 차로 한 시간) 두어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도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시도하고 싶다. 가족들과 정 붙이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사 전에는 최소한 30분 전에 들어가 앉아 있기로 했다. 주일에는 새벽 4시 25분에 일어나기로 했다.(딱 두 번 늦게 일어나 수녀님과 사무장님이 깨웠던 적도 있지만, 사제관 TV에 자동 켜짐 기능을 발견하고는 그런 일은 없게 되었다.) 5시에는 성당에 들어가 제일 먼저 난방기나 냉방기를 틀었다. 가족들이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시원하게 미사 봉헌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가족들이 성당에 들어왔는데 춥고, 더우면 하느님의 집에 정을 못 붙일까봐 걱정이 되어서. 전기세와 기름값을 아낀다고 늦게 틀면,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기세와 기름값 낼 돈은 하느님께서 주신다고 믿었다. 실제로 주일 봉헌금이 더 늘었다.
성당 밖에도 밝게 하고 싶었다. 전기시설을 정비하며, 가로등을 몇 군데 더 달았다. 우리 성당을 방문한 동기신부가 “마치 폐가에 들어오는 것 같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전 마당이 너무 어두우면 나라도 오기 싫을 것 같았다. 좀 환해야 하느님과도, 가족들과도 정 붙일 수 있지 않을까!
다음해 대림시기에는 대림초를 들고 대림환 순회 기도를 하면서 가정 방문을 하기 시작했다. 가정방문을 한다면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함께 기도하자고 포장(?)하여 방문하였다. 대림초라는 것을 처음 본 가족들도 있었다. 대문 앞에 성경말씀이 적힌 문패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대문에 붙이게 해드렸다. 가족들과 정을 내는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함께 기도했으니 더욱 좋았다.
10개 공소 중 6개 공소에 주일 미사를 드리러 나갔다. 3주에 걸쳐 토요일 저녁 1대, 주일 아침 1대로 한달에 한번씩 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공소 신자네, 본당 신자네, 구별해 온 전통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공소’라는 말보다는 ‘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전 신자가 한 가족이고, 함께 정을 붙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회의가 너무 많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보를 발간하기 위해서 매주 수요일에는 가능한 회의를 했다. 늘 회의없이, 상의없이 하면 꼭 오판과 실수를 저지르는 나의 습관을 알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도 더욱 아름답게 하고자 애를 썼다. 먼저 구석구석에 쌓인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였다. 아마 몇 트럭은 버렸을 것이다. 본당 수녀님과 본당 가족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첫 2년은 이 일을 계속 반복했다. 덕분에 성당 전체가 많이 가벼워졌다.(?) 나뭇가지 전지도 사다리를 대고 직접 해봤다. 비싼 전정가위를 사서 자꾸 다듬어 보니 실력(?)도 늘었다. 예수성심상을 세우고, 그 앞 광장에 잔디를 심었다. 열심히 풀을 뽑고, 가꾸었다. 성경말씀을 틀어놓고 풀을 뽑으니, 잡념이 사라지고 몰입과 잠심이 절로 되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기쁨과 보람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농촌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농촌을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파란 잔디 위에서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 때가 제일 흐뭇하다.
사무실도 부임하자마자 현 위치로 옮겼다. 전임 신부님의 결정이었고, 가족들에게 잘 서비스하기 위해선 현 위치가 합당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욕심이 지나쳐 무리하게 가족들과 공감대 형성 없이 공사를 강행했고, 돈이 많이 들었다. 우리 본당 수준에선 막대한 금액이었다. 이에 가족들이 반발하였다. 나는 잘못을 깨닫고, 공적으로 가족들에게 사과하였다. 그러자 가족들도 나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다. 나로선 좋은 경험이었다. 그 이후론 가능하면 가족들과 천천히 상의하며 하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더 아름답게 하려는 과욕을 식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수많은 공사를 하였다. 가족들이 성심껏 함께 주었다. 수많은 은인들이 도움을 주었다. 하느님 은총을 체험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일어났다. 본당 마당 정비한다고 이쁜 자갈을 깔았는데, 이게 휠체어나 굴림의자를 쓰시는 어르신들에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당 일부분에 블록을 깔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지 얼마 안 있어, 어느 분이 블록을 봉헌해 주셨다. 근데 블록을 깔 돈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하느님께선 블록을 깔 수 있는 은인과 장비를 금방 보내 주셨다. 어느 더운 여름날, 소나기를 맞아가며 블록을 깔아주신 은인들께 감사드린다.
지금까지 하느님과 본당 가족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4년 동안 본당 가족들과 함께, 하느님의 집을 더 정겹고, 더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제는 성전 건립이라는 과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가천에서 새 성전이라!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저으며 걱정하고, 본당 가족들도 반신반의한 일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꼭 필요한 일이고, 하느님의 일이라 하느님과 은인들이 함께 힘을 많이 불어 넣어주셨다. 지금 시간에도 수많은 은인과 본당 가족들이 기도하며 희생을 봉헌하고 계시다. 감사 또 감사드릴 뿐이다. 앞으로 이 집은 본당 가족들과 후손들이 영적인 힘을 얻을 집, 도시 본당 가족들이 와서 기도하며, 쉴 집이 될 것이다. 즉 도시와 시골 신앙 가족 모두를 위한 집이 될 것이다.
가천이란 지역은 가야산과 물 좋은 계곡으로 뛰어난 경관과 깨끗한 물과 공기로 ‘앞으로 살고 싶은 100곳’에 선정된 곳이다. 도시에 있는 가족들이 많이들 와서 함께 기도하며 사시길 기대해본다.
이런 하느님의 집, 하느님 백성의 집을 짓기 위해 나와 가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또한 하느님의 집을 짓는데 힘을 조금씩 보태줄 은인들을 많이 보내 주시길 기도한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실 것을 확신한다. 내년 이 맘 때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도시와와 시골에 사는 하느님 백성 모두를 위한 집이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가천성당 성전건립기금에 도움 주실 분·
농협 733113-51-021867, 대구은행 269-10-002910 (재)대구구천주교회
문의 : 가천성당 054) 932-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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