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코스모스가 안내하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비닐하우스가 넘실대는 들판 한가운데 단아한 천상의 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4년간 과학교사로 근무하면서 느낀 천상에서의 일상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참외가 맛있기로 소문난 성주군 용암면의 소규모 학교인 용암중학교입니다. 시골학교 학생들이지만 우리나라 여느 학생들처럼 컴퓨터 게임에 올인하기, 유행하는 춤과 노래 따라하기,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부담도 느끼고, 친구 때문에 고민하고 행복해 하는 말괄량이, 개구쟁이 학생들입니다. 그러나 우리학교 학생들에겐 시내 큰 학교에서 볼 수 없는 밝은 표정과 쉬는 시간 10분도 아까워 아무렇게나 허비하지 않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일과 시작 전에 농구하고 45분 점심시간 동안 밥 먹고 축구까지 할 정도이지요. 전교생 60명도 안 되는 학교이다 보니 전교사가 학생들을 일일이 다 알고, 아이들도 교사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사제(師弟) 동행이 이루어지는 이곳이 바로 천상의 학교입니다.
요즈음 시골학교의 시설은 대도시 학교보다 더 현대화 되어 있고, 각 전공별 특별실이 지정되어 있어 저절로 과밀학급이 해소되며 특별실에서 선진국 형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교사인 저는 수업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때가 많습니다. 호기심 많은 시골아이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법칙을 이미 체험하고 있으며 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뜯어보고 해부하여 스스로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앞 뒤 조금만 설명하면 쉽게 알아듣고 스스로 응용하면서 심화학습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연 속에 파묻혀 생활하는 아이들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저도 그런 이유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실을 늘 개방하고, 수업시간에 나오는 현상은 주변 위주의 이야기와 관련지어 하다보니, 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더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저 또한 큰 도시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수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생물 시간에 배우는 소화기, 순환기, 배설기 등을 설명하면 당장에 비단개구리(무당개구리)를 잡아와서 “선생님, 개구리 해부해요!” 하면서 손을 내밀기도 해 놀라기도 하지요.

물론 함부로 잡으면 안 되기에 야생 개구리는 살려주고 황소개구리를 사서 해부하지만, 항상 과학실 근처에서 많은 아이들이 모여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는 장면을 볼 수 있답니다. 다가가서 보면 메뚜기, 무당벌레, 심지어 도마뱀을 잡아서 꼬리도 자르고, 사마귀 배 부분을 터뜨려 연가 시 기생충을 들여다보는 등 독특한 실험을 스스로들 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실전에서는 제가 더 모르는 게 많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학교 학생들은 전교생이 만능 엔터테이너들입니다. 운동이면 운동, 문예면 문예, 연극이면 연극, 미술이면 미술, 과학이면 과학, 무슨 대회이거나 우리 선수들은 종목만 바뀔 뿐이지 선수는 그 선수가 그 선수입니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학생들이 이 대회 저 대회 다 참가하게 되어 여러 가지 잠재력을 두루 발휘하곤 하지요. 큰 학교에서 이름없이 앉아있는 아이들은 본인의 잠재력을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찾아내기도, 키우기도 어렵지만 우리 아이들은 조그만 잠재력이 있어도 여러 선생님들께 거의 개별 지도를 받다보니 중학교 3년을 마치면 전문가 수준이 되어 학생들이 후진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항상 이렇게 낙천적이고 여유있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참외 비닐하우스에 가서 보온덮개를 벗기고, 방과 후에는 참외 선별 작업을 해야 하고 또 휴일에는 무더운 하우스에 들어가 직접 참외도 따는 등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학업에 몰입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과 여유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경제적인 뒷받침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요.
부모님의 사랑의 무게야 같겠지만 표현 할 수 있는 경제력의 차이가 있으니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구김살 없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여느 도시의 학생들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습니다. 또 학업에 몰입하고, 앞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은 부족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은 그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기성세대로 서의 부끄러운 일을 한 가지 고백하자면 그런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보고, 똑 같은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일을 교사로서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투자방식이 다르면 산출물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성적이라는 산출물 앞에서는 원칙도 상식도 이해도 무시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일번지에 비하면 물질적인 혜택은 분명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충만한 기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미소는 하우스 속에서 새봄에 노랗게 태어날 참외처럼 희망의 순을 틔우면서 어디선가 또 개구리를 잡아서 해부하자고 천진난만하게 뛰어 들어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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