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입니다. 오전부터 시작해서 밖으로 나다니면서 볼일을 보고 오후 복사단 모임과 주일학교 어린이 미사, 교사회의, 기타 성탄 관련 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근 밤 1시에 이르기까지 강론을 붙들고 씨름한 뒤에 결국 마무리를 못하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쓰기로 다짐을 한 뒤, 새벽 5시로 알람을 맞추고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게 웬일입니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쿵짝거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 심장과 더불어 온 집안을 뒤흔들어 대는 스피커 소리, 그리고 시작되는 사회자의 멘트들… 가까운 곳에서 생일잔치가 시작되었나 봅니다.
누차 이야기한 바 있듯이 이 곳 사람들은 유난히도 축제를 좋아합니다. 축제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각종 음향시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들입니다. 그것도 부드러운 클래식이나 잔잔한 리듬 앤 블루스도 아니고 저음이 한껏 강조된 레게나 힙합, 혹은 우리나라의 트로트에 견줄 만한 이 나라 전통 음악들 일색입니다. 한국 같으면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한 번에 아파트 위아래로 싸움이 날 지경이건만 이곳에선 사람들이 참으로 너그럽기도 합니다. 그 누구 하나 한밤중에 시작해서 새벽녘까지 계속되는 이 어마어마한 소음들에 뭐라고 대꾸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도 이해할 만한 것이 이웃집 생일만 잘 참아내면 자기네 생일날 시끄럽게 떠들어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도 서로 돕고 돕는 ‘상부상조(相扶相助)’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하하하.
 
소음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오전 주일 미사를 거의 마쳐갈 즈음해서 성당 바깥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 바로 앞길로 한 줄기의 차량 행렬이 이어지며 각 차들마다 달아놓은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뿜어져 나옵니다. 선거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트럭마다 후보자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달고 그 안에 사람들이 올라타 길 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며 선거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길 가의 아이들은 그 물건들을 받느라 위험하게도 차량 주변을 졸졸 따라다니고, 심지어는 성당 안에 얌전히 앉아 있던 꼬마 녀석들마저도 그 모습을 보고 쪼르르 성당 밖으로 달려 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은 내가 아무리 한껏 목소리를 높여 미사경문을 읽어도 신자들에게 들리지가 않기에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잠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이 날 복음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심문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왕국은 이곳에 속해있지 않다.” 차량행렬이 지나가고 그나마 좀 조용해진 공지사항 시간에 신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 정치인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댈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침묵 가운데 우리에게 속삭이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저의 이 말에 미소로 답해 보였습니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수녀원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 나라 특유의 ‘소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아녜스 수녀님은 “이 나라 사람들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늘 들떠있는 게 후덥지근한 기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너무나 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와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언제부턴가 제 생활에서도 이 소음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조용한 성당이나 성체조배실 안에서 침묵을 즐기던 나이건만 어느새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음악을 틀어놓지 않으면 지루해지는 나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웬만한 소음 정도에는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잠이 들 무렵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또 축제가 있나보다.’하고 생각하며 잠이 들어 버리는 고수(高手)의 단계에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언제나 뭔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딱히 할 일이 없음에도 뭔가를 붙들어야 하고 그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또 알지 못할 불안증에 시달립니다. 이미 내 안에 간직해오던 영혼의 침묵을 주변의 소음들에 빼앗겨버린 느낌입니다.
 
우리 영혼에 생각할 기회를 주는 외적인 침묵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침묵은 단순히 외적인 소음이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주변이 아무리 고요한 곳에 있다 하더라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불안과 걱정들로 인해 결코 나는 진정으로 고요한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 마음을 씻어내야 합니다. 내 마음 안에 더러운 찌꺼기가 없을 때에 나는 진정으로 고요한 침묵 안에 있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이 시작된 2010년의 첫 달, 조심스레 한 해의 계획을 짜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 이전에 먼저 내 마음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창문이 맑아야 그리로 들어오는 빛도 맑고 밝게 빛나겠지요. 가까운 성당으로 찾아가 고해소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 예수님께서 ‘영혼의 고요’를 선물로 준비하시고 그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