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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찾아서 - 성산성당 옥포공소
추억이 깃든 그곳, 옥포공소


취재|박지현(프란체스카) 기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본리리 2408-1번지에 위치한 성산성당 옥포공소. 52년의 역사를 가진 옥포공소는 1956년 전윤범(안드레아) 초대 공소회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전체 주민 가운데 달랑 세 가정의 신자들은 미사 참례를 위해 4km 떨어진 화원성당까지 항상 걸어 다녔다. 교통이 편리하지 않아 성당 한번 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윤범 회장은 주민들에게 전교활동을 펼쳐 약 20여 명의 예비신자를 모아 자기 집에서 교리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56년 초가을 무렵, 전윤범 회장이 당시 화원성당 박재수(요한) 주임 신부에게 공소 설립 계획을 이야기했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건의하는 전 회장의 굳은 의지에 박 신부는 결국 공소 설립을 허락하였다. 

그렇게 1957년 5월에 현재 공소 위치에 대지 186평을 구입하여 6월부터 공소 신축공사를 시작하였으며, 그해 9월 8일에 축성 겸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 후 예비신자가 늘어나게 되었고, 주일학교를 발족시키는 등 옥포공소는 나날이 더욱 발전해 갔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옥포공소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마을이 발전하면서 많은 신자들이 도심지로 빠져나가고,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본당에서 미사 참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몇 안되는 공소 신자들은 여전히 공소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12월의 첫째 수요일 저녁 7시 30분, 평일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신자들이 공소에 모여 있었다. 화원성당 소속에서 현재 성산성당에 소속되어 있는 옥포공소는 매월 첫째, 셋째 수요일과 둘째 주일 오후 2시에 김봉진(안드레아) 주임신부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공소 신자들과 본당 신자들이 함께 정성스레 미사를 봉헌한 뒤 함께 모였다. 김 신부는 “52년의 역사를 가진 옥포공소를 조금이나마 활성화시키기 위해 성산성당 부임 후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면서 “본당과 멀지 않지만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공소에서 미사 드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본당 신자들도 공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옥포공소를 본당 내 하나의 구역으로 포함시켜 공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반모임을 실시하고 있다. “공소가 있어 이곳에서 모임도 하고, 더불어 친교와 화합을 다지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는 김 신부는 “공소는 이곳 신앙의 뿌리로써 그 명맥을 잘 이어가며 앞으로 선교의 거점으로 잘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윤범(안드레아)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전병곤(파비아노) 2대 회장을 거쳐 1981년부터 현재까지 공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우식(요사팟) 3대 공소회장은 전윤범 초대회장의 아들로 옥포공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현재 공소 신자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 몇몇 분뿐이지만 그동안 옥포공소를 위해 애쓰신 많은 분들의 정성이 담긴 이곳을 쉽사리 없앨 수도, 없애서도 안 된다.”는 전 회장은 “그동안 참 많은 신자들이 함께 했다. 1987년 가을에는 공소 설립 30주년을 자축하며 서울의 절두산과 새남터 성지를 순례하기도 했다.”면서 공소 벽에 걸린 단체사진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에도 아직 정정한 모습의 전윤범 초대회장은 “마을에 있는 개신교 교회는 자꾸 흥하는데 천주교 공소가 문을 닫고 미사도, 공소예절도 드리지 않는다면 마을 주민들이 ‘천주교는 끝났다. 망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면서 “미사를 드리지 못하면 공소 예절이라도 꾸준히 드리면서 신자들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하였다.



“이곳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게 되어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될지 모르겠지만 옛 추억을 간직한 채 계속 이곳에 머물 것.”이라는 전우식 회장과 공소 신자들이 있기에 옥포공소는 오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