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을 보내며…
최미경(임마누엘라)|구미 신평성당
떨리는 마음으로 고3 교실을 들어섰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능을 친 지 2주일이 넘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수능을 정말 치른 것인지 그동안 괴로워하며 지냈던 나날들이 아득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고3 시절은 20년이 채 안 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기였다. 수능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한다는 압박감과 내가 앞으로 가게 될 길의 한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부담감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처럼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매달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내려가는 등급에 나는 절망에 절망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 있던 희망과 용기가 점점 사라졌다. 동시에 의지도 약해져서 좀처럼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데도 계속 견뎌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이 점점 견딜 수가 없어졌다. 차라리 빨리 수능을 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렇게 고3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 피할 수 없는 중압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쌓이게 되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작은 일에도 쉽게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는 일찌감치 책을 덮어버리고 연습장을 펼쳐서 거기에 수능이 끝난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쭉 써내려간 적도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그 일들을 정말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렇게 써내려가는 동안은 정말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약간 유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그 당시 슬럼프를 극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보냈던 고3 시절이 모범이라고 말하기엔 많이 모자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루 하루를 예민하게 보내는 수험생들이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탈출구를 한두 개쯤 가지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 혹은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의연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자세가 모두 힘들어하는 고3 시절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자 머지않은 훗날 성숙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데에도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을 되돌아보며
김소연(마리아)|포항 이동성당
작년 이맘때쯤 선배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전 자연스레 새로운 고3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잘 적응했던 매일의 일상은 힘들고 지쳐가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수험생이라는 꼬리표 아래 대우도 달라졌지만, 그에 비례해 더해만 가는 수업과 자습의 양은 절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느 샌가 수업의 목적은 학문의 전달이 아닌 수능시험이 되었고, 자습의 의미도 희미해져버렸습니다. 피곤과 스트레스는 공공연한 적이며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마저 대학으로 가는 문 앞에선 적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점점 치열해져만 가는 경쟁과 의무가 되어버린 공부가 만들어 내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 어머니이기보다는 수험생의 어머니를 택하신 어머니는 매일매일 집에 모신 성모상 앞에서 저를 위해 기도드리며 저와 함께 잠을 주무셨고, 전 그런 어머닐 뵐 때마다 그저 죄송스럽고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하루하루 줄어만 가는 수능까지의 날짜를 보며 까닭도 없이 원망스러운 마음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성당을 찾은 어느 날, 신부님께선 제 남은 수험생활을 그리 괴롭지만은 않게 해 줄 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학생의 기도는 공부다!”
돌이켜 보면 고1 때의 저는 신앙생활을 참 열심히 했었습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으며 주일미사는 절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점점 바빠지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것도, 제 신앙마저 멀어진 것도 사실이었기에 신부님의 말씀은 더욱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별개라고만 생각했던 수능공부와 신앙생활을 연결시켜주신 신부님 덕에 하느님께 소홀했던 점에 대한 죄책감도 덜 수 있었습니다. 덧붙여서 신부님께선 공부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주님, 제가 하는 이 공부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고, 이 기도는 수능을 위한 공부뿐만 아니라 앞으로 대학교에 가서도 하느님께 제가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하지만 뜻은 절대 간단하지 않은 그 기도 한 줄과 수험생 시절을 함께했던 신앙생활은 힘들고 고단하기만 했던 학교생활과 극도의 긴장이 감도는 친구관계를 순조롭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고3 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어서 더욱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청소년 교육에 대해서 말하다!
장보근(요한)|월성성당
요즘 심심찮게 학생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성적을 비관해서 투신자살한 여중학생, 성적표 때문에 혼이 난 초등학생의 자살 등…. 이런 보도를 보면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서 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게 되는 걸까요? 우리나라 교육에 큰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얼마 전에 초,중,고등학교 12년간의 교육을 단 하루 동안의 시험에 모두 소진한 고3 학생입니다. 그동안 제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시험을 치르면서 느낀 점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지나친 입시 위주의 경쟁이라는 점입니다. 저희 학교에는 심화반과 준심화반, 그리고 그렇지 않은 반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는 준심화반이었고, 제 친구들 중에는 심화반인 친구들도 있었고, 두 반 어느 쪽도 아닌 친구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화반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 간의 차이. 이야기를 할 때나 모르는 문제를 묻거나 혹은 시험이 끝난 후 답을 맞춰보고 할 때 그 차이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더 지나자 반에서는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심화반인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밥먹고, 운동하고 또 준심화반은 준심화반끼리,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또 역시 자기들끼리 이렇게 끼리끼리 모여 지내게 됐습니다. 학교는 순수하게 동기들과 함께 생활하며 우정도 쌓고, 인격도 형성해가는 곳인데 학교에서조차 이런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계급이라고나 할까요. 사회에서 어른들이 상류층과 서민을 나누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역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요?
수준별 학급을 운영하는 것은 학습의 효율성에서는 참 좋은 시스템입니다. 심화 과정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심화 과정을, 개념을 다져야 하는 학생에게는 개념 정리를….이런 취지는 참 좋다고 생각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 사이의 위화감만 조성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수준별 학급을 통해 저 역시 성적이 올랐지만 입학해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들과 지금 소원해진 모습을 보면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수준별 학급은 진정 학생을 위한 제도일까요, 아님 교사들을 위한 제도일까요?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보며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릅니다. 지나친 입시 위주의 경쟁 속에서 우정이라는 것이 경쟁 속에 가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도 생각납니다.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 수능은 끝났지만 인생의 경쟁은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교육 제도가 바뀌어서 제 후배들, 동생들에게는 친구들이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우정을 나누는 소중한 동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끝나가는 고등학교 생활
이윤경(유스티나)|성김대건성당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면, 고3 때 있었던 여러 일들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지난 시간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추억들이 많이 있지만, 올해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포함해서 처음 겪어보는 일도 많았고, 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또 어떤 점에서는 자신을 칭찬해 보기도 했었던 그런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전국의 많은 학생들과 함께 대학을 목표로 두고 경쟁을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고3생활을 순조롭게 보낼 수 있었던 건 하루 24시간 중 반 이상을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사소한 일상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우리들의 웃음 덕분일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급실장을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더 많은 일을 겪었고, 어떤 일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며 생활했어야 했다. 1학년 때는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환경과 공간, 그리고 시간 속에서 설렘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결하며 생활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지치게 되고, 포기하고 싶고, 또 공부를 하며 느꼈던 불안함이 많아지고, 공부의 양과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하루하루가 재미없었다.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을 미리 생각해보고 반드시 될 거라는 생각보단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앞서고,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껴본 것도 가장 많았을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겨울방학도 없이 고3 생활을 시작했다. 일어나기 싫어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등교해서 영어듣기를 하고 수업하고 점심을 먹고 또 수업하고 자습을 하는 시간이 몇 주 지속되더니, 하나 둘 자습을 하지 않고 가버리는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자습을 하지 않고 가도 아무 일없이 넘어가지만 운이 나쁘면 다음날 벌금과 함께 청소를 해야 했다. ‘1004’라는 핸드폰으로 우리 잘못을 고발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제도 때문에 우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 1004가 누군지 찾을 것이라며 추측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1004가 누군지는 모른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 되면 또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 쉬는 날도 없이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고 일요일, 공휴일 없이 거의 매일 공부를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도 고3은 학교에 나와 자습을 했어야 했다.
오후 5시까지 자습을 하는데 3시쯤 우리 반으로 퀵 서비스가 왔다. 큰 상자였다. 상자의 주인은 바로 나였다. 어머니께서 어린이 날이라고 과자를 보내주셨다. 마지막 학창시절이라며 친구들과 과자를 나눠 먹으라고 편지에 적혀 있었다.
상자 속 과자를 보더니 한 친구가 자기 엄마에게 전화해서는 “엄마! 어린이 날인데 선물 없어? 우리 반 실장 엄마는 어린이 날이라고 과자 보냈는데~”이러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자 그 친구가 “우리 엄마가 ‘니가 실장 이었으면 나도 보냈다!’”이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반 모두가 크게 웃은 적도 있었다.
쉬는 시간, 청소 시간, 맛있는 급식이 나오는 날,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날, 일찍 마치는 날, 토요일 점심을 해결하는 날에도 우린 그 시간 자체를 즐기며 서로 의지하고 버티며 생활했다. 수능이 다가오자 수시로 대학을 지원하는 친구들이 생겨나고 수능을 앞두고 수시 발표 때문에 방황하는 친구들도 생겼지만, 모두 무사히 수능을 치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내고 생활하게 될지 고민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가 고민하던 일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들 기억 속에 올 한 해는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