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선교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지난 며칠 동안 성탄을 준비하면서 미시온(Mision : 선교)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선교를 가 있으면서 또 무슨 선교냐 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미시온은 성탄 전 9일 간의 기간 동안 지금 우리가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외진 곳의 시골 공소에 본당 청년들이 찾아가서 먹고 자면서 그 곳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 프로그램입니다. 기본적으로 전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물 역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를 퍼내던지 미리 받아놓은 물을 아껴 써야 합니다. 잠자리 역시 공소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거나 긴 의자를 몇 개 붙여서 임시로 침대를 만들어 자야 합니다. 모기, 파리와는 가족이 될 지경이고 박쥐, 뱀, 커다란 거미와도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시골로 차를 몰고 가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시골의 놀라움은 그 광활한 대지와 어우러진 하늘의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세상에 놀라운 화가들이 많다 하지만 하느님처럼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모습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아름다운 색깔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한 밤에는 까만 밤하늘에 별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별들은 흐려있던 마음을 절로 맑게 해 주는 느낌입니다. 다음으로 체험하게 되는 놀라움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모습의 아이들이지만 그네들의 맑은 표정과 웃음,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그 자체로 놀라움의 대상입니다. 시골 사람들의 인심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공소들을 방문한 견진 교리교사였던 청년 오스칼이 찾아간 한 집에서 아주머니가 딱히 선물할 게 없다며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라는 말에 당황스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걸 배우기도 했습니다. 일단 먹기 위해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에 로끄로(locro : 한국의 삼계탕 같은 닭 요리)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 닭을 사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닭을 사는 것부터가 일이었습니다. 닭을 고르고 난 뒤에는 그 닭을 잡기 위해 뛰어야 했습니다. 나와 함께 2명의 청년들이 장장 십여 분을 뛰어다닌 결과 겨우 닭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닭을 잡는 법도 배웠습니다. 한 손으로 목을 비틀어 잡고는 허벅지 바깥쪽에 대고 나머지 손으로 다리를 잡아 힘껏 당기면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끊어지면서 닭이 축 늘어집니다. 그렇게 늘어진 닭의 모가지에 칼집을 내고 피를 뽑아냅니다. 어느 정도 피가 흘러나오고 나면 끓는 물에 잠깐 담궜다가 꺼내서 털을 뽑아냅니다. 이렇게 해서야 결국 저녁에 맛있는 로끄로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형마트에 가서 잘 손질된 닭을 사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는 이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를 이야기하려다 어째 ‘오늘의 요리’가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제 소견으로 ‘선교’는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잘 꾸며진 말로 또 잘 정돈된 말쑥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수님에 대해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그 순간일 뿐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갔을 때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 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는 ‘와서 보는’ 시간, 즉 함께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던 것은 우리와 함께 머물기 위해서,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신자들에게서 이 ‘함께함’을 느끼지 못하면 그들은 우리들의 말을 들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공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들어가 함께 보고 듣고 느낄 때에 그들 역시 우리가 전하려는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기회임과 동시에 ‘선교’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다른 누구보다 먼저 가까운 가족에게 또 친지들에게 신자다운 모범적인 삶의 모습으로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