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연중 제5주일 : 루카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 그대가 존재함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라.(루카 5,1)
가. 그대의 존재가 매력이 있을 때, 군중이 모여든다.
예수님의 매력은 공생활 시작부터, 세례 때 하느님 말씀과 성령의 표징을 보여주시고(루카 3,21-22), 강력한 마귀의 유혹을 이기시고(4,1-13),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치시고(4,14-15), 미래 긍정과 희망의 희년을 선포하시고(4,16-30), 더러운 영을 내쫓고 여러 번의 치유행위(4,31-41)를 행하심으로 드러났다.
말씀의 제자들은 먼저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언행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며, 화려한 미사여구의 언어를 구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이 흔들림 없이 진리에 입각하여 서 있어라. 그리고 진실하게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라. 어려운 문제는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나가면 그대는 상대방에게 소중한 사람, 기쁨을 주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 그대의 존재가 매력이 있을 때, 모여든 군중은 그대의 말을 듣는다.
매력을 가지고 말을 할 때 사람들은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루카 5,2)
2.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라.(루카 5,3)
가. 선포의 대상을 선택하고 집중하라.(루카 5,2)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따르는 가운데서도, 주요 선포의 대상을 선별하시고 집중하셨다. 모든 군중을 대상으로 하되, 주요 대상자들(시몬과 그 형제)을 선택하여 체험시키신다.
나. 복음화 전략을 가지고, 가능하면 그 순서를 지켜라.(루카 5,2-3)
먼저 예수님께서는 배 두 척을 바라보신다.(관찰) 그리고 고기잡이 생업에 종사하는 시몬의 배에 접근하신다.(접근) 그들의 배에 오르신다.(생업-관심의 중심에 서다.) 그들의 생업에서 잠시 물러날 수 있게 배를 조금 저어 나가도록 부탁하며 대화로 유도한다.(대화 시간 확보) 선택된 인물인 시몬의 배를 타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신다.(새로운 존재 의미와 가치 부여, 역할 체험 수업) 결정적으로 군중을 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신다.(생명의 말씀 - 케리그마 선포)
이와 같이 처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만, 그 다음으로는 그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을 선포한다.
3. 일상과 생업을 초월하는 가치(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케 하라.(루카 5,4-6)
가. ’말씀’을 중심으로 신비 체험에 ‘초대’하라.
제자 그룹(직원이자 주요 고객) 형성과 동시에 전체 군중(일반 고객)을 향한 ‘일반적 가르침’의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 그룹에게 별도의 말씀으로 주도하신다. 즉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어부인 시몬(베드로)은 밤새 그 일대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진일보한다. 말씀을 듣기 시작하는 단계의 사람은 순종으로 나아가며,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는 체험에로 초대되는 것이다. ‘저희가 밤새도록…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나. ‘행동’으로 신비를 ‘체험’하게 하라.(루카 5,6-7)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4. 신비체험의 현상을 항상 먼저 이해하라.(루카 5,6-9)
첫째,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충만함의 체험이다.(루카 5,6-7) 전업이 고기잡이인 시몬 베드로는 자신을 무한히 초월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둘째, 너무나 두려워 위축되며, 주님의 현존이 부담스러워 떠나주시기를 바라게 된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루카 5,9)
셋째,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정도로 심오하고 초월적인 매력에 빠져든다.(루카 5,10-11)
모순되는 것 같은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하느님 신비(현존과 말씀과 행위)’의 거룩함 앞에서 두렵고 떨리며 지극한 죄스러움에 사로잡힐 정도로 ‘압도되는 현상’과 그 거룩함의 매력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버리고 전적으로 추종하는 ‘자유로움의 현상’이다.
- 복음은 ‘두려워하지 마라,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부들은 배를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증언한다.
- 이 신비체험의 양면성은 제1독서의 이사야의 체험과 제2독서의 바오로의 부활신앙 체험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바오로의 신앙체험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6장(박해자), 9장(신비체험자)의 내용을 보충하여 참조할 수 있다.
2월 14일 설 : 루카 12,35-40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1. 사제의 축복기도를 받아라.(특수사제직)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라.(보편사제직)
1) 새 출발에 앞서 ‘과거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리라’, ‘새 출발을 위한 하느님의 은혜와 보호를 확신하라.’그러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여정에 ‘사제 축복의 의미를 상기하라.’
가. 이집트 탈출 여정에서 : 첫 번째 파스카 축제를 거행하며 이집트를 탈출(탈출 12,1-51)한 이듬해, 이스라엘은 시나이 광야에 도착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조직을 점검하고 정비하며, 새로운 광야 여정을 준비한다.(인구조사, 지파간의 위치와 행진 순서 결정, 다양한 직무와 역할 분담, 법질서 확립, 예배규정 등의 세부지침 하달, 민수 1-8장 참조) 그런 다음 이스라엘은 시나이 광야에서 두 번째 파스카를 맞이하고(민수 9,1-14), 이집트 탈출에 이은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민수 9,15-11,36)
나. 시나이 광야 여정에서 : 이집트 탈출 제2년째의 여정은 더 이상 뒤쫓는 이집트가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노예적인 인습과 미래지향적 비전과 열정이 부족한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갖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불평불만과 비난, 반역과 반란, 각종 죄악과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지향적 여정의 발목을 잡는 과거회귀적인 사고와 행동 등의 불순종과 싸우게 된다.(민수 11-16장 참조) 물론 백성은 벌을 받아 회개에 이르고 정화와 단련의 과정을 경험한다.(민수 17장. 19장 ; 21,4-9)
그러므로 민수기 6장의 사제의 축복은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의 광야 여정(시나이로부터 모압을 향한 여정의 시작) ‘과거의 성공을 유지시켜 온 현 체제에 대한 점검과 정비’,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광야 여정의 준비’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 현대인들은 나·우리·인류를 과거에 성공시켰던 원리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정비와 준비를 갖출 줄 알아야겠다. 지금까지의 하느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미래의 성취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을 기억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복음적 성공과 승리의 확신으로 전진해야겠다.
2. 설날에 받는 하느님의 축복을 자선으로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어라.
1) 조상들의 은혜를 기억하라.
사제의 축복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하고 미래를 향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평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으로서 입은 모든 은인들(부모와 조상들과 가족들과 스승 등)의 은혜를 또한 기억하고 감사드려라. 조상들과 가족들로부터 부정적 환경을 물려받아, 분명히 치명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집트를 탈출한 조상들 중에서 부정적 사고의 주역들(현재의 처지에 대한 부정과 불평, 과거의 나쁜 환경에 대한 남 탓하기, 전진하고 발전하기를 거부한 조상들)은 광야에서 모두 정화되고 사라졌다.
반면에 성공적 인생의 주역들(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고 성취지향적이고 비전과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은 모두 가나안을 정복하였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성공적인 인물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 본인의 탓 없는 잘못된 환경과 나쁜 원인 제공자는 어느 시대에나 항상 있어 왔다.(현재의 부정적 원인 찾기와 남 탓하기로 허송세월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나쁜 환경의 장애와 어려움의 이유를 불문하고 나와 우리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2) 하느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 사랑으로 완성해 나가라, 천상의 영생 보험을 들어라!
하느님의 축복은 보편 인류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받은 축복을 혼자서만 누리는 것은 하느님 축복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광야여정에서 ‘만나’를 잉여식량으로 챙기다 썩혀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처신과 같다. 썩기 전에 이웃과 나누어라.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돈주머니와…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루카 12,33) ‘자선’은 하늘나라에 저축하고 영원한 생명의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자선이 가족 친척과 친지뿐만 아니라, 특히 명절일수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인류의 모든 이웃들과 나누어질 때,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름 모를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보자. 과거에 전혀 자선의 습관이 없어 어색하다면, 교회의 아름다운 모범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명절을 통해서, 나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증거하라.
1) 종말론적 깨어있음을 실천하라.(루카 6,35-40)
명절을 모든 (특히 가난하고 외로운 소외된) 이웃과 즐겁게 잘 지내는 일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며,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의 나눔을 통한 또 하나의 하느님 은혜다. (그러나 반대로 무관심, 인색, 과음과식 등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왜곡할 정도로 건강을 해치고, 친인척간의 우애를 깨뜨리고, 이웃에게 불편과 위화감을 주는 일은 특히 삼가고 주의를 기울여 피해야 할 것이다.)
명절은 우리 신앙의 기쁨을 특별히 가까운 이웃에게 증거하는 시기임을 기억하자. 명절은 우리가 만나는 (그동안 껄끄러웠던 친인척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회이다. 불편한 친족들과 명절을 보내고 또 그 후유증을 며칠씩 겪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명절 연휴를 너무 소모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왕 지내는 명절을 즐거운 명절이 되도록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보자.
명절에 종말론적 깨어있음을 실천하자. 불편하기도 하고 아프기까지도 한 명절에,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며, 내 이름을 불러주실 계획을 갖고 계심을 떠올려 보자.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간관계에서의 상처와 어려움을 용감히 떨쳐내 보자. 그 대신 주님께 응답하는 자세로 모든 이웃을 밝고 새롭게 대해보자. 첫 번째 성공이 두 번째 성공을 가능하게 한다. 한 번 성공해 보자.
2) 어떤 처지에서도 복음적 행복론을 간직하라.(루카 6,35.38)
신앙의 목적은 궁극적인 행복이다.(루카 6,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행복한 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나 스스로 피로와 스트레스와 마음의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복음적 실천을 하자.
가. 일단 나의 문제가 무엇이든, 하느님의 손에 모두 맡기자.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보장해 주시는 혜택을 누리자.(마태 11,28-30 참조.) “고생하며 무거운 짐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나. 나의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스트레스와 짐을 넘기지 말자. 나의 자유와 해방만큼 그들의 자유와 해방도 소중하다.
다. 다른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편하도록 즐거운 수고와 희생을 해보자. 이열치열(以熱治熱). 수고하면서 내가 더 행복한 법을 복음의 행복론은 가르쳐준다.(시편 1,1-6; 마태 5,1-12)
2월 21일 사순 제1주일 : 루카 4,1-13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1. 세례를 통한 성령충만(聖靈充滿)과 성령인도(聖靈引導)를 항상 유지, 관리, 성장시켜라.
1)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루카 3,21-22참조),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다.(루카 4,1 참조)
가. 삼위일체 하느님 이름의 세례다. 세간에는 가톨릭의 세례는 요한이 주는 물의 세례이고, 개신교 세례는 성령과 불의 세례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세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례이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하여 얻어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세례로, 물과 불이 갖는 정화와 구원, 신앙의 신비와 은혜 등의 의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세례식 때 사제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000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선언한다. 즉 가톨릭의 세례는 정상적인 성령의 세례라고 불릴 수 있다.
나.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잉태되실 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루카 1,35) 공생활 시작으로 세례를 받으실 때(루카 3,21-22)나 고향으로 돌아오실 때(루카 4,1),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실 때(루카 4,14)나 한결 같이 성령의 충만과 이끄심에 순종하셨으며, 설교하실 때에도 주님의 영(루카 4,18)이 내리셨다. 말씀 자체에 넘치는 권위와 한 말씀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능력(루카 4,31-37;9,37-43) 등 수많은 치유의 능력은 분명 성령충만의 능력이었다. 루카 11,14-23에서 예를 찾아보자.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것은 베엘제불의 힘이 아니라 분명히 성령의 능력이다.
다. 산(山)의 기도들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친교의 시간으로써 필시 성령충만의 시간이었다. 제자들을 뽑으시기 전(루카 6,12.17 참조), 제자들의 파견 때(루카 9,1-6 참조), 거룩한 변모 때(루카 9,28-36 참조) 등도 세상과 격리된 예수님의 고독한 기도는 성령과의 친교와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가지시는 시간이다.
라. 가장 결정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신 사실에서 드러난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성령충만과 성령인도의 삶이었다는 증거이다.
2)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은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유지, 발전된다.(사도 2,1-36)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의 가톨릭 교회는 처음부터 성령의 활동으로 시작되었으며, 오늘도 그렇게 새롭게 탄생되고 성장한다.
2. 악마의 유혹을 주님의 영과 말씀으로 물리쳐라.
1) 악마가 지닌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지식은 수준급임을 주의하라.
첫째, 40일 단식 끝에 하느님의 아들로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루카 4,3 [능력의 발휘])
둘째, 높은 곳에서 나라들의 권세와 영광을 위하여 악마를 경배하라는 유혹(루카 4,5 [권력을 위한 악마 경배와 타협])
셋째, 성전에서 뛰어내려 하느님의 아들로서 천사들의 보호를 받으라는 유혹(루카 5,9 [성자의 기득권을 누림])
우선 위의 이 세 가지 유혹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악마도 예수님도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악의 세력도 하느님의 말씀을 궤변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악의 세력들의 술책에 휘말리는 경우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가. 여기에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식별(識別)’이 요청된다.
예수님과 악마의 말씀 인용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점은 예수님에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친교가 있고, 특히 성령충만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점이다. ‘무로부터 천지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과 ‘존재를 부정하는 어둠과 혼돈을 다스리시는 성령의 활동’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선포되고 증거되느냐 하는 점을 관찰하면 큰 식별의 줄기는 잡는 셈이다.(만약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믿음과 순종의 길이 아니라 자기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논리를 주장하며 동시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벗어나서, 창조와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교회의 공동선과 일치의 원리에 위배되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주신다. 진취적인 주장이라 하여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것은 성령의 가르침일 수가 없다. 현대교회가 요구하는 진취적 입장이 될수록 ‘교회의 일치’를 더욱 염두에 두는 것이 ‘복음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나. 여기서 신앙인에게 ‘말씀에 대한 지식 확장’과 ‘성령 안에서의 일치정신’이 요청된다.
-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적 말씀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 가는 것과 ‘성령충만의 체험’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시종일관 성령의 이끄심’에 일치시키고 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 ‘창조성과 일치성의 조화(調和)’가 요청된다. 여기서 ‘창조성’은 기본적으로 하느님 말씀의 창조적 능력과 특성을 말한다. 또한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신앙인인 인간이 지닌 창의성, 독창성, 예술성, 미적 감각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2) 천지창조의 원리를 다시 상기하라.
가. 창세 1,1-5
1절)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절)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위를 감돌고 있었다.
3절)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
4절)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5절)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원리가 드러나야 하느님의 일이다. 즉 1절 하느님의 창조 주도성(主導性) / 2절 ‘하느님의 영(靈)’ / 3절 ‘말씀(眞理)’ / 4절 보시니 좋았다(善,美) / 5절 질서(秩序)와 조화(調和)를 갖춘 운영(運營) 등이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악마의 짓들과 극명하게 잘 구별되게 하는 것들이다.(교회 공동체 안에 침투해 있는 악마의 언행들과 성령의 활동을 구별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3)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고백과 예배-봉헌을 살려내라.
제1독서 신명 26,4-10에 언급되어 있듯이, ‘하느님의 은혜’로 지금의 나와 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신앙고백과 예배 및 봉헌이 살아있는가?’ 이 점은 ‘사목자와 신자’공동체 전체가 함께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 점은 우리 공동체가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인지를 진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3. 항상 닥쳐올 다음의 위기를 대비하라.
가.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에게서 떠나갔다.(루카 4,13) 그와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악마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지금 닥쳐있는 이 유혹과 위기는 지난 시간 언젠가부터 기다려온 악마가 포착한 최고의 기회이다.
나. 개인과 공동체에 항상 위험과 기회가 존재한다. 좋은 지도자는 항상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위협에 항상 대비한다.
다. 언제나 처음처럼 모든 과제와 문제를 새롭게 대하며, 신중하게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라.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 로마 10,8-13에서 믿음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고백함으로써, 의로움과 구원을 얻으라고 가르친다. 이는 위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재의 믿음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미리 위기를 차단하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현대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최선(最先)의 선(善)일 것이다.
2월 28일 사순 제2주일 : 루카 9,28-36
28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아.”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1. 하느님의 약속이 지금 당장 성취되지 않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루카 9,28ㄴ-36)는 약속된 미래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활 마지막 부분이다. 예루살렘이 가깝다.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루카 9,18-21) 이후,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1차로 예고(루카 9,22) 하였으나 제자들은 아직 알아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는 원칙을 가르쳐 주셨다.(루카 9,23-27)
수난과 부활 예고 후, 고된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가르치시나 그 결과와 효과에 대해서는 제자들이 아는 바가 더욱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변모 장면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된 모습을 미리 맛보여 주신다. 예수님의 교육학적 태도가 드러난다.
첫째, 반드시 미래에 대비하여 준비를 시켜주신다. 열두 제자들을 선발(루카 6,12-16) 및 파견(9,16),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10,1-12)하시고 보고받으시는 등(10,17-20), 사도직 수행을 위해 계획적으로 실습시켜 주신다.
둘째, 반드시 성취된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 이어서, 수난의 각오를 시켜 주시면서도 미래의 영광된 모습을 반드시 미리 보여 주신다. 이미 들음과 믿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미리 본 것이다. 들음과 불신의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눈으로 혹은 온 몸으로 믿음으로 나아갈 체험할 기회를 주신다. 거룩한 변모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외에도 토마스 등은 그 좋은 예에 속한다.
나. 제1독서(창세 15장), 아브람의 두려움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듯한 불안감에서 나온다.
창세 12,1-4에서 하느님은 아브람을 부르시어 미래를 약속하셨다. 자손과 땅과 이름의 축복을 보장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은, 당장은 인간 아브람의 기다림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믿음의 모범인 아브람도 속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생겼다. 늙은 아브람을 상속할 수 있는 친아들도 현재에 아직 주시지 않은 채,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있을 큰 상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하시기 때문이다.
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말씀과 예배와 비전’ 안에서 해결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통하여 ‘비전’을 보여주신다. 하느님의 말씀과 비전 안에서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경지(창세 15,6)에 오른다. :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믿음으로 말씀에 응답하는 아브람에게 주님께서는 더 큰 비전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 ‘나는…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이다.’(창세 15,7)
예배와 봉헌으로 응답하는 아브람에게 주님께서는 계약을 맺어 비전을 확정해 주신다. :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창세 15,18)
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 안에서 체험을 주시고, 비전을 보여주신다.
수난과 부활에 대한 1차 예고(루카 9,22)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무거운 말씀(루카 9,23-27)을 받은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산에 동행하여,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9,29)와 모세-엘리야와의 말씀 나눔(9,30-31)을 보고 들었다. 거기서 너무나 황홀한 체험을 하게 되어,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고 싶은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다.(루카 9,33 참조)
2. 세례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받은 약속은 부활이다.
1) 그리스도의 신비는 부활의 신비이니, 성경 해석의 가장 근본적 기준으로 삼아라.
가. 거룩한 변모 사건은 부활 신앙을 기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수난과 부활에 대한 1차 예고가 있은 다음 문맥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제자들은 목격한다. 계속해서 2차 예고(루카 9,44-45)와 3차 예고(루카 18,31-34)가 이어진다.
나. 거룩한 변모 사건은 결정적으로는 예수님의 성찬 제정(루카 22,14-20)을 포함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루카 23,26-24,53)이라는 큰 문맥에서 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2) 부활 신앙의 대전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하여 원수가 되지 마라.
부활 신앙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십자가 신앙을 간직해야 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제2독서 필리 3,18-19 :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을 생각합니다.
3) 부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광스런 변화임을 기억하라.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그 모습으로, 우리 신앙인은 결국 변화한다. 필리 3,21 :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교육학적 기술을 배우라.
첫째, 예수님은 권위있는 말씀의 가르침과 치유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신다.
둘째, 당신의 제자들을 선발하시고 특별히 별도의 교육을 시키신다.
셋째, 당신의 제자들에게 부활의 비전과 그 전단계인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신다.
넷째, 그 비전에 열정을 다해 투신할 수 있도록 미리 체험시켜주신다. 그 신비 속으로 초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의 여정도 그 길을 걸어야 하며, 선교와 복음화 사업의 봉사자들도 그런 길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탁(클레멘스) 신부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사제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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