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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여성을 존중하는 우리 교구가 되었으면


하성호(사도요한)|신부, 교구 사무처장 겸 월간 <빛> 잡지 주간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의 창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나의 어머님이시다. 장부를 일찍 여의고 자식 6남매를 혼자 몸으로 키워내시는 고생을 그토록 하시고도, “너희들 가운데 한 명도 속 안 썩이고 커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이 바로 나의 어머님이시다. 자식들을 위해 어떤 역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으시며, 희생의 삶으로 자식들에게 위대한 삶의 가치와 유산을 물려주셨다.

십여 년 전에 폐렴으로 어머님은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가셨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폐에는 고기 진국을 많이 드시는 것이 좋다고 어머님께 권했다. 평소에 고기를 싫어하시던 어머님이셨지만, 웬일인지 고기 진국을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드시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그리고 어머님은 병상에서 일어서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머님을 병상에서 일으켜 세운 힘은 고기 진국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 유학 중에 있던 작은 아들 신부에게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어머님의 일념이었다.  

이런 어머님을 생각하며 어머님의 희생은 참으로 거룩하다고 대학 교목실을 담당할 때 학생들에게 강론하였다. “신부님, 요즘 그렇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어요!”라며 학생들의 항의(?)를 받으며 무척이나 당황해 했던 기억이 난다. 철부지 녀석들은 자기 어머님은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산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식 보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어머님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또한 언젠가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함부로 대하는 신학생들을 향해, “너희들 어머님이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면 그렇게 아주머니들을 대하겠느냐?”고 크게 꾸짖은 기억도 난다. 나의 어머님은 자식들 키우신다고 수년간 식당에서 일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학생들의 그러한 태도는 나의 어머님을 멸시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느껴졌다. 남을 섬기기 위해 사제가 되겠다는 신학생들의 의식 속에도 저런 못된 특권의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나 보다. ‘그 신학생에 그 신부’라는 서양 격언이 그저 나온 말은 아닐 텐데…. 

이 땅의 여인들과 어머님들이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얼마나 힘겹게 꿋꿋이 지키고 있는가를 철부지 녀석들이 어찌 알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어머님’ 하면 가정만 돌보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을 먼저 생각하지만, 남성우월주의로 길들여진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신들의 자질이나 능력이 무시된 채 한직으로 밀려나 마미 트랙(mommy track)을 돌아야 하는 워킹맘들의 설움을 남성들이 알기나 하겠는가? 여자들이 설쳐서 일자리가 없다고 불평이나 해댄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잃게 되는 정신적 가치를 생각이나 해봤던가? 아이 딸린 여성을 그렇게 무시하며 아이 낳으라고 외치기는 왜 그렇게 외치는가?

교회 내에 여성의 지위는 어떠할까? 사실 이 주제는 꺼내기조차 두렵다.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의 70%가 여성이라는데, 여성을 위한 교회의 배려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여교우들 앞에 그저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분들은 그저 신부님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말씀만 하지 않아도 좋겠다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다. 비록 이번 시노드 주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해도, 교구설정 10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교구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제를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