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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
교회론과 성사론 안에서의 성령의 망각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에서의 중세 서방 교회론

‘제국으로서의 교회’라는 교회상으로부터 도출되는 교회론에 의하면, 교회와 제국은 공동으로 그리스도교 사회를 건설하며, 그 사회 안에서는 교회와 국가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54년 동·서방교회의 분열 이후에 동방에서는 삼위일체론·그리스도론·성령론과 밀접히 결합된 교회관이 발전하였고, 제국이 동방에서 존속하는 반면에 서방에서의 제국의 붕괴는 ‘세계적’이고도 ‘영적인’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내었다. 또한 교회의 제도적인 특성은 더 폭넓게 강화되었으며 그 기본질서는 유대교적인 범주 안에서 형성되었다.

 

11세기에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교회를 위한 자유와 고유한 권리를 요구하였고, 이완된 교회규율을 다시 세우고 교회를 평신도들의 힘(정치적인 힘)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을 목표로 교회를 개혁하였다. 이로써 교회는 당연하게도 국가적인, 실로 군주국적인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교계제도, 특히 교황으로부터의 자주적이고 완전한 사회로 파악되는 것이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티노가 작업한 신학적 주제들은 계속해서 교회론에 영향을 끼쳤는데, 여기에서의 교회는 아직도 계속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과 성사들을 통해 하나가 된 신자들의 전체로서 그리고 영이 불어넣어진 몸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12세기부터 교회론에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 스콜라 신학자인 롬바르두스(Petrus Rombardus +1160)와 빌헬름(Wilhelm von Auxerre +1237)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함으로써 시작된다. 새로운 방향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성체가 아닌 교회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4세기에 ‘신비적인 몸(Corpus mysticum)’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체성사 안에서의 주님의 몸인 성체 혹은 성사적으로 숨어계시며 현존하시는 주님의 몸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신자들은 이 몸을 통하여 (영성체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몸(Corpus verum)인 교회로 변화된다는 것이 이와 관련한 생각이었고, 이는 9세기까지 서방교회의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11세기에 베렝가르(Berengar von Tours)가 성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을 순전히 상징적으로 파악하려는 견해를 보이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 신비적인 몸이라는 단어는 성체성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즉 교회를 그리스도의 참된 몸으로 보는데 비해, 성체를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 보는 견해는 위험하게 여겨져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을 신비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서 이제 개념의 교체가 일어난다. 12세기 중엽에는 성체성사 안에서의 그리스도 현존의 실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성체성사적인 몸이 그리스도의 참된 몸으로 표현되고, 교회는 순전히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 표현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3세기에는 이 새로운 용어가 두루 사용되게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신비스런 몸이라고 했을 때 (성체성사와 관련된) ‘Corpus Christi mysticum(신비스런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성체성사와 무관한) ‘Corpus Ecclesiae mysticum(신비스런 교회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즉 교회는 이제 신비스런 몸으로서 그 머리가 교황인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그리스도인들의 몸을 뜻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신비스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개념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영을 망각한 교회론을 촉진하게 되었다.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의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자신의 주된 관심을 세계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면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는다! 하지만 이러한 불가피한 자기주제화와 더불어 법제적으로 방향지워진 교회론이 기초되고 전개되었고, (안타깝게도!) 아직 이 교회론에서 중심이 되어 있었던 것은 교회의 (영적인 면은 소홀히 한) 교계제도였던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서의 교회론 개략

 

르네상스(문예부흥), 자유주의, 산업혁명 등에 이은 19세기의 정신적인 혁명은 교회를 새롭게 자극하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다. 권위라는 표지 안에서의 복구를 주장하는 전통주의(Tradotionalismus)1)와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us)2)가 그것인데, 이들 운동은 이미 뿌리를 내린 교황직을 새로이 견고케 하고, 교황체제군주국(Pontifikalmonarchie)으로서의 교회라는 이데올로기를 전개코자 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한편으로는 재발견된 중세기적이고 교부적인 신학이,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낭만주의에 뿌리를 둔 쇄신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튀빙엔 학파(T  binger Schule : J. A. M  hler +1838, J. H. Newman +1890)’와 소위 ‘로마 학파(R  mische Schule : G. Perrone +1874, J. B. Franzelin +1876, M.-J. Scheeben +1888)’는 교회를 다시금 Corpus mysticum Christi로, 즉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 말은 이제 전처럼 (성체성사와 무관한) 신비스런 교회의 몸이 아니라 (성체성사와 관련된) 신비스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계속되었던 것은 오히려 교회를 가시적이고 교계제도적인 사회라는 외적인 요소들을 통하여 정의한 벨라르미노(Bellarminus +1621)적인 노선이며, 가시적이고 교계제도적이라는 이러한 교회론적인 이원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유지되었다.

 

교회론 안에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가시적이고 제도적이고 직무적인 면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게 된다. 1943년 비오 12세의 회칙 ‘Mystici Corporis’는 성서적인 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교회를 순전히 법제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서방신학의 교회론은 그 원천을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둔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주의 안에서 최종적으로 성령의 망각의 뿌리도 보여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J. Brinkrine이 지은 교회론(Die Lehre von der Kirche, Paderborn : 1963)의 목차는 (내적이고 영적인 면을 소홀히 한) 그러한 교회론의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신론(神論)’은 (약500쪽 중에서 26쪽만을 할애한) 성령에 관한 유일한 장(章)에서 (‘성자의 발출’이라는 장 다음에) 성령의 발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론 성령에 대해서는 단지 조금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영을 망각한 이러한 상황은 교회가 지역 공동체와 쇄신운동과 카리스마(은사)를 주목하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인정함으로써 조금씩 개선되었다. 이를테면 교회론에 있어서 아주 소홀히 여겨진 은사적인 국면은 성령의 위치가 강조됨으로써 교회의 중심에서 다시 보여지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신중심적이고 성령론적인 교회론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런 관점에서 K. Richter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이제) 교회는 일종의 성령론적인 교회론 안에서 영이 불어넣어진 운동으로 이해되며, 이는 제도적인 요소보다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의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