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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부의 먼 곳에서 만나는 예수님
바람


마진우(요셉)|대구대교구 신부, 볼리비아 선교 사목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김성래 신부님이 방학을 맞이해서 이 곳 볼리비아에 왔습니다. 신부님이 우유니 소금 사막을 가보고 싶다 해서 함께 비행기 표를 끊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먼저 라파스에 도착을 해서 달의 계곡을 구경하고 버스를 타고 우유니를 향했습니다. 12시간에 걸쳐 도착한 우유니에서 여행사를 고르고 10시 반에 예정되었던 여행을 정오가 되어서야 비로소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우유니 여행과 똑같은 코스에 작년 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알뚜라(고산병)까지 덮쳐 여간 곤욕이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동기 신부님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견뎌 나갔습니다.

우유니 여행은 보통 6명이서 팀을 이루어 한 차를 타고 가는데 저희 팀에는 2명의 체코슬로바키아 청년들과 또 다른 두 명의 덴마크 청년들이 함께 했습니다. 소금 사막과 형형색색의 호수도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2박 3일의 여정 가운데 마지막 날, 체코 청년들과 덴마크 청년들을 모두 칠레 국경 너머로 보내고 우리 둘만 남아 우유니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운전수 아저씨가 작년 내가 갔던 길과는 좀 다른 코스로 간다 싶더니 기어코 작은 시내를 무리하게 건너려다 그만 가운데에 멈춰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변에서 먹구름은 비와 번개를 쏟아내며 몰려오고 있고 그 덕에 수위는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었습니다. 운전수 아저씨는 도움을 청하러 가겠다며 떠나버리고 성래 형과 나, 그리고 국경에서 합류한 아저씨만이 남았습니다. 도대체 어딘지도 모를 이곳에서 멍하니 물이 불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금 수차례 모래를 퍼내고 바퀴 밑에 돌을 받치기도 하며 노력해 보았지만 차는 움직일 생각을 않고 설상가상으로 강한 찬바람까지 불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는 차가 한 대 있어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장비가 없다며 매정하게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차 안에 들어앉아 마냥 기다리는데 도움을 청하러 갔던 아저씨가 다른 여행객의 차를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케이블로 차를 연결하고 사륜을 걸고 다시금 차를 빼기 위해 애썼지만 그 노력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우린 우리를 도우러 온 차에 짐을 옮기고 그 강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우유니 시내, 기차역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기차표를 판매하는 시각이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표를 다시 판매한다고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 안에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오루로를 향해 떠나는 버스표를 구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오루로를 향해 떠나는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좋은 차편은 이미 만석이 되어 있었고 근처 여행사들을 들르고 들러 겨우 암표 한 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 올라 비로소 좀 쉬어 보려나 싶었는데 이번엔 이 버스가 얼마쯤 가다가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어제 오늘 내린 비로 도로 사정이 최악이라 작은 오르막길 하나를 오르지 못하고 수많은 버스들이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첫 버스가 언덕을 통과하고 마침내 우리 버스도 언덕을 통과 하였습니다. 이걸로 끝이었을까요? 아직 남았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을 5시간이나 훌쩍 넘긴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니 버스가 정지해 있었습니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앞 자리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이제껏 극한의 인내심으로 잘 견뎌오던 동기 신부님의 얼굴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엄청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짐을 챙겨 자리에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불안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운전수와 정비사가 차 바닥에 들어가 낑낑대며 차를 고치고 있었고 그 주변을 불만 가득한 표정의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한참의 수리 후에 차는 고쳐졌고 우리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이 바람이 들어 있어서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불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이 바람을 따라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고 다른 누군가는 이 바람을 따라 사랑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바람에 ‘성령’이란 이름을 붙여볼 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머물고만 싶어 하는 우리의 게으름에 바람을 불어넣어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 바람은 우리를 늘 안락한 곳으로만 이끌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시련으로 더 큰 어려움으로 우리를 내모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머물기를 원하고 쉬기를 원하지만 우리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은 우리에게 시련이 더 필요함을 잘 알고 계시고 우리를 그리로 이끌고 싶어 하십니다.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부드러움과 포근함으로 무장한 봄바람이 다가오는 계절 3월입니다. 추위에 꽁꽁 닫혀있던 우리의 마음들을 열고 바람처럼 활동하시는 성령으로 모셔 들여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김광석의 노래라도 들으면서 어디라도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곳 그 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 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
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 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코차밤바로 가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마진우 요셉 신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