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읽기의 방법을 구체적인 본문에 적용하고 있는 우리는 마르 1,29-31을 자세히 읽고 있다. 본문의 구조 중에서 ① 상황묘사 ② 문제발생 부분을 읽은 우리는 이제 ③ 문제해결 ④ 결과 부분을 살펴볼 차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본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찾아볼 것이다.
문제해결
30절에서는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그녀에 대하여 예수님께 이야기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즉 갈등이 일어나고 긴장이 발생한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누구에 의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31절은 본문의 구조 중에서 문제해결에 해당한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동작을 꼼꼼히 살펴보자. 예수님은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키셨다.” 예수님의 동작을 표현하는 세 개의 동사는 “다가가다”, “잡다” 그리고 “일으키다”이다. 그분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단지 행동하신다.
예수님의 첫 번째 동작은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다”이다.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있는 그녀를 데리고 오라고 하시지 않고, 당신이 손수 다가가신다. 31절에서는 그분 홀로 행동하신다. 앞선 30절에서 그녀에 대해 예수님께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그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은 이제 행동하신다. 우리 본문 안에서 묘사된 예수님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29절에서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 안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31절에서 마침내 누워있던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신다. 이와 같이 우리 본문 안에서 예수님은 세 단계에 걸쳐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신다. 그녀에게 다가가신 동작을 통해 예수님은 문제해결을 위한 당신의 주도권을 표현하신다.
예수님의 두 번째 동작은 손을 “잡다”이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시는 장면이 몇 군데 있다. 마르 5,41에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손을 잡으시고 “탈리타 쿰”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르 9,27에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예수님의 손과 관련된 다른 구절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르 1,41에서 예수님은 어떤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고, 마르 6,5에서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주시며, 마르 8,23에서는 눈먼 이에게 손을 얹으신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시든지, 그들에게 손을 얹으시는 행동을 하는 것은 치유 기적사화나 구마 기적사화 안에서이다. 어쨌든 우리 본문에서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으신 동작은 그녀를 일으키는 동작과 연결된다.
이처럼 예수님의 세 번째 동작은 “일으키다”이다. “일으키다”는 성경에서 잠자는 사람을 깨우다,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을 일어나게 하다, 죽은 사람을 살리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 동사는 전체 마르코 복음서에서 19회 사용된다. 우리 본문에서는 “일으키다”라는 동사가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표현하는데, 다른 치유나 구마 기적사화에서도 이 동사가 사용된다. 마르 2,9에는 중풍병자, 마르 3,3에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 마르 5,41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르 9,27에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 그리고 마르 10,49에는 예리코의 눈먼 이와 관련하여 이 동사가 쓰였다. “일으키다”라는 동사는 예수님의 치유 행위뿐 아니라 그분의 활동 전체를 표현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일으키다”라는 동사가 마르 14,28; 16,6.14 등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살아생전에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던 것이다. 즉 다시 살리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본문 31절의 세 동사 “다가가다”, “잡다”, “일으키다”는 예수님의 동작을 표현한다. 이 동작 다음의 문장에서는 ‘시몬의 장모의 열이 가셨다.’라고 한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열이 그녀를 떠났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몬의 장모는 치유되었다. 즉 30절에서 발생한 문제가 비로소 31절에서 해결된 것이다. 이 문제해결의 단계에서는 앞 단계에서 발생한 갈등이 해결되고 긴장이 해소된다.
우리 본문에서 문제해결은 예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예수님이 문제해결의 주체인 것이다.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고, 실제로 그녀를 고쳐주셨다. 예수님의 문제해결은 우리 본문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가?
결과
우리 본문은 치유된 시몬의 장모가 사람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녀의 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는 “시중들다”로써 “봉사하다”, “섬기다”의 의미를 가진다. 이 동사는 우선 식사 준비와 식탁 봉사를 가리킨다. 우리 본문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 같은 의미로 사용된 구절은 마르 15,41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근처에 있었던 여인들에 대한 묘사이다. 이 여인들을 표현하는 두 동사는 “따르다”와 “시중들다”이다. “따르다”라는 동사는 예수님의 제자 됨을 뜻한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뒤따르고 시중들던 여제자들이 있었다.
우리 본문에서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된 후 사람들에게 봉사하였다. 비록 그녀는 십자가 근처에 있었던 여인들처럼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치유에 대한 감사로 다른 사람에게 시중을 들었다.
본문 안에서의 변화
지금까지 우리가 자세히 읽은 본문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변화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등장인물은 바로 시몬의 장모이다. 열병으로 누워 있던 그녀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되어 마침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행동 없이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누워 있던 그녀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된 것이다. 이 변화를 가져다준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변화가 가능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서 일으키신 변화는 단순한 신체적 치유만이 아니라 바로 삶의 변화인 것이다. 수동적인 삶이 능동적인 삶으로, 자신 안에 닫혀있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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