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창에서 헐티재(535m)를 넘어 청도 각북면 지슬공소로 가는 길. 굽이굽이 휘어진 산길을 따라 오른 헐티재를 경계로 가창과 각북면으로 나뉜다. 청도성당(주임 : 함영진 요셉 신부) 소속 지슬공소 이상만(오딜론) 회장을 만나기로 한 주일 이른 아침. 공소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는 청도의 특산물인 복숭아, 사과, 감 등 과일나무들이 벌써부터 봄기운을 머금은 채 발그레한 빛을 띠고 있다.
지슬리에 도착은 했지만 공소를 알리는 입간판이 없어 우뚝 솟은 십자가를 보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마침 집 앞에 나와 계시던 마을 어르신이 눈에 띄어 차를 세우고 공소로 향하는 골목길이 맞는지 여쭤보았는데 어르신이 바로 이상만 공소회장이다. 공소 안으로 들어선 이상만 회장은 알림판에 공소예절 때 부를 성가를 순서대로 적으며 준비를 서두른다.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25년째 공소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이상만 회장은 “딱히 문서화된 자료랄 것도 없이 그저 초대 회장님 때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공소 역사의 대부분.”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소가 생긴 것은 54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우리 지슬공소가 생기기까지는 김달주(노렌조) 초대 회장님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칠곡 가실성당의 교우였던 김달주 회장이 지슬리로 이사를 와서 자신의 한옥집에서 예비신자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를 한 것이 공소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배경을 안고 시작된 지슬공소는 세월의 흐름 속에 낙후된 한옥건물에서 공소예절을 계속 해오다가 1996년 곽재진(베드로) 신부가 청도성당 주임으로 부임하고부터 공소건축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다. 공소건축은 힘든 여건 속에서 당시 본당 신부와 신자들, 공소 신자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교구의 후원과 동성건축사, 대광건설, 강남조경 등 많은 이들의 영적기도와 물질적 봉헌으로 2000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되어 최근에는 피정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소를 지척에 두고 살면서 공소를 관리해오고 있는 이상만 회장은 최근 들어 신자수가 좀 늘었다고 일러준다. “요즘은 매주 30여 명의 신자들이 공소예절에 참석하고 있는데, 60-70대가 대부분이지만 그 중엔 젊은 부부도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대구에서 이곳 청도 각북면으로 이사 들어오는 이들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소에도 신자수가 늘었어요. 특히 신자 부부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다 활기를 띠고 있고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각북면에는 지슬리를 포함해서 15개의 동이 있는데 공소에 나오는 신자들은 가깝게는 지슬마을부터 멀리는 3-4Km 반경에 드는 마을에서 오는 이들이란다. 미신이나 불교의 영향으로 전교가 잘 안 되는 곳이기에 발벗고 나서서 전교활동을 하기 보다는 마을 주민들에게 꾸준히 권면하고 있는 정도란다. 소공동체 모임이나 레지오 마리애 등의 활동 역시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매주일 공소예절과 더불어 수요일 저녁이면 농삿일을 마친 공소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를 바치며 저마다의 소박한 마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다.
주일 공소예절이 끝나고 맑은 햇살이 비치는 공소 마당에 모인 신자들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긴다. 밀양 영화학교 교장 김일영(스테파노) 씨는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지슬공소에 나오게 되었는데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들이 머무는 공소.”라며 “특히 공소회장님과 신자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고 들려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이진희(사도요한) 씨와 이건모(요한) 씨도 같이 운을 뗀다. “공소 회장님의 아들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에서 사제성소의 길을 걷고 있고, 딸은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을 정도로 모두 우리 공소의 큰 자랑입니다.” 그러자 홍일갑(요한) 씨도 “집사람(박흥자 아가다)이 왜관의 구교우 집안에 태어나 신앙생활을 했기에 오래 전부터 전교를 많이 하고 있고, 나 역시도 집사람 덕에 세례를 받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라며 기쁨을 표현했다. 11년 전 대구에서 남편과 이사와서 이제는 공소생활에 깊은 애정을 갖고 살아간다는 김옥자(아녜스) 씨는 “이곳은 경치만큼이나 신자들 마음도 착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열다섯 살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지슬공소 이상만 회장은 새삼 고마운 마음으로 옛일을 회고한다. “지금처럼 번듯한 공소가 생기기 전만 해도 바람이 불고 몹시 추운 겨울날이면 쓰러져가는 공소에서 도저히 예절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 와서 공소예절을 하기도 하고 또 신부님이 방문하시는 주일이면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지요. 그런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공소를 잘 지어 하느님께 봉헌하고 보니, 공소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이 됩니다.”

청도성당에는 5개(대천, 동곡, 지슬, 토평, 풍각)의 공소가 있는데 그 중 토평공소는 본당과 가까워서 매주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매월 첫 주일에는 공소신자들이 모두 본당에 모여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본당주임신부가 네 개의 공소를 순회하며 각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주일 외에는 공소예절을 통해 신자의 본분을 행하고 있다. 언젠가 신자수가 늘어 활성화 되면 본당이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지슬공소의 이상만 회장과 신자들. 그들은 하루하루 땅을 일구듯 하느님의 자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