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사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어느 병원에 급한 환자가 있어서 병자성사를 주러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정신과 병동을 막 지나오는데 한 환자가 수단 입은 저를 보더니 “아니, 신부님이 이 시간에 본당에 계시지 않고 왜 이 병원 복도에서 왔다갔다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아니, 이 환자가 본당신부의 교회법상 상주(常駐)의무를 이야기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난데없는 공격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봉사자가 “신부님은 지금 급한 환자가 생겨서 병자성사를 주고 가시는 길입니다.”라고 설명을 하였더니 빤히 쳐다보면서 “아, 그러면 119 신부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119 신부. 그렇습니다. 위급한 환자에게 성사를 집전하는 119 신부. 그런데 따지고 보면 모든 신부는 119 신부 이상으로 신자들을 돌보고 있지요. ‘병자의 날’ 담화문에서 교황님께서는 병자들의 봉사자들인 모든 사제들이 고통 받는 이들과 병자들에게 아낌없는 배려와 위안을 주기 바란다고 하셨는데, 사실 모든 신부들은 언제나 신자들의 성사적 필요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병원사목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치매 병동에서도 일어납니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에게 봉성체를 하러 갔습니다. 8인 병실에 수녀님과 함께 봉성체를 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가 다른 환자들의 양해를 구한 후 예식을 시작하여 진행하고 마지막 즈음에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며 성체를 영해주려고 누워 있는 그 환자에게 몸을 굽히는 순간, 그 할머니는 느닷없이 내 손을 탁 치면서(하마터면 성체를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이게 머하는 짓이고? 벌건 대낮에….”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수녀님이 “할머니, 성체 영하셔야죠?”라고 말을 하는데도 연신 “이래 사람 많이 보는데서?”라고 하시는 겁니다.
때로는 참 안타까운 일들도 많습니다. 유아영세 후 평생을 냉담하다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어떤 형제는 노모의 극진한 사랑과 기도로 회개하여 첫영성체이자 마지막 노자성체를 병자성사와 함께 받고 선종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가도 성모상 앞에서 기도할 때만 되면 호흡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돌아서면 다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기를 반복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하면서 가족 모두를 여러 번 병원에 집합시키는 어른도 계십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빨리 하느님께서 데려가 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분도 계십니다. 한밤중에 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병자성사를 드리러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돌아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원목자의 한 사람으로서 환자가 정신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 병자성사를 청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볼 수 있으며 성체를 영할 수 있을 때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신부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준비시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그 외에도 수십 년 냉담하신 분, 혼인 조당문제로 근본소급유효화나 단순유효화가 필요하신 분, 교적이 없는 분은 부지기수이며 세례대장이 없는 경우 등등. 하지만 이런 서류상의 문제보다도 마지막을 앞둔 이들에게 배려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지금 사정으로는 119 신부만 하기도 너무 버겁습니다. 하루 빨리 임상사목센터를 세워 원목자 교육과 아울러 봉사자 교육도 서둘러야 하겠는데 교구에서 배려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119 신부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젊은이들을 신학교에 많이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최후심판 이야기에서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말미에서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병자들을 따뜻하게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도 내가 병들거나 임종을 맞이할 때를 대비하여 보험 드는 것과도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 각자는 ① 병자들 돌보는 자원봉사를 지원하든지 ② 기도로 그들과 함께 하든지 ③ 후원을 하든지 셋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하시기를 제안합니다.(후원계좌에 실명으로 입금하시는 경우 교구청을 통하여 지정기부금 납입증명서를 발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더 할 이야기는 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고 다른 병원을 사목하는 이들에게 붓을 넘기겠습니다. 각 병원의 원목실 미사시간과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왼쪽사진 참조) 그 외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도 지난 2월부터 봉사자가 파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막강한 기도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119 신부, 늘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 두 번에 걸쳐 어려운 글을 읽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병원사목에 도움주실 분들께서는 아래 계좌로 후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은행 041-10-004598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병원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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