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그레이스~” 저는 자주 이 성가를 즐겨 부릅니다. 그것은 저만이 느낄 수 있는 무한히 크신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 감사를 부족한 저의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직도 저는 주님 앞에 부당한 죄인이지만, 이 글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하심에 혹 의심을 갖고 있는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님을 위하여 또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굳건한 신앙과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2005년 11월 첫 주일 아침, 일어나보니 손바닥크기의 멍이 제 다리 여러 군데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그 길로 영남대학교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더니 그곳에서 ‘백혈병’이란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포교베네딕도수녀회 아는 수녀님의 도움으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가게 된 저는 그 길로 6개월 동안 집에 오지 못하는 긴 투병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의 은총으로 아는 수녀님이 그곳 백혈병담당 교수님과 잘 아는 터라 도착한 그날 바로 무균실 병동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정확한 병명은 ‘백혈병 엠쓰리(M3)’였습니다. 알고 보니 벽혈병도 그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다행히 골수이식을 하지 않고 약물치료만으로 완치가능판정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깐, 병원에 도착한 그날 저녁 첫 약물처방을 받은 저는 약물부작용으로 급속도로 혈소판이 낮아져서 그만 폐혈관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저의 온 가슴은 혈액으로 가득차 중환자실로 옮겨져야 했고 제 스스로는 숨을 쉴 수도 없는 식물인간같이 되어, 열이면 열 명 모두가 사망한다는 그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제 입속과 코 안은 여러 가지 줄로 이어져 있었고 꼼짝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몸이 묶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에 큰 기운이 생기면서 빨리 이 호스들을 뽑아야 제가 살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담당 주치의가 와서 손을 풀어주면서 종이와 펜을 쥐어주고는 불편한 것을 적어보라 했습니다. 저는 “이 줄들을 빨리 다 뽑아 달라.”고 썼습니다. 주치의는 깜짝 놀라면서 옆에 있는 호스를 통해 숨 쉴 때마다 제 가슴에서 뿜어지는 붉은 피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치의는 “이 관을 뽑으면 대단히 위험한 상태가 되고 다시 관을 꽂는다 해도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저의 마음은 이 관을 뽑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주치의에게 “죽어도 좋으니 이 관을 뽑아 달라, 뽑아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이 관을 뽑겠다.”고 하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이것은 분명히 강력한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평소 저 같은 겁쟁이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호스를 뽑겠다고 말한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다음날이 목을 뚫어서 관을 새로 연결하는 날이었는데, 인공호흡기도 오래 사용하면 세균이 번식된다고 설명하더군요. 하지만 주치의도 저의 의지가 너무나 강력했기에 무슨 일을 낼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을 느꼈던지, 결국 환자의 소원대로 뽑겠다면서 제 입속의 쇳덩어리 같은 관을 뽑았습니다. 그 순간, 뿜어져 나오던 피가 멈추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 마음을 움직여 이 관을 뽑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 저는 “감사드립니다.”하면서 그것도 아주 크게 소리 내어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벽시계를 보니 정각 3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순간 평소 바치곤 했던 3시 자비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놀란 주치의는 “어떻게 그렇게 크게, 그것도 길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면서 보통 환자들이 관을 뽑게 되면 2-3일 혹은 3-4일 동안은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멈춰진 피를 보면서 주치의는 의학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저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다시 시계를 봤습니다. 비로소 주님이 운명하신 그 시간에 제가 다시 살아난 것을 알았습니다. 이사야 53장 10절에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하신 이 말씀, 바로 주님은 저의 속제물이 되셨으며 대신 저는 살아난 것입니다. 제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기적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중환자실에 실려가 온 가슴이 피로 가득하여 엑스선 촬영사진에 온통 까맣게 나왔을 때 담당 교수님은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다. 모든 가족 분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저의 가족은 원목신부님께 연락하여 마지막 병자성사를 부탁드렸고 원목신부님은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달려와 저에게 마지막 성사를 집행했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이 이때 일어난 것입니다. 담당교수님이 왠지 다시 한 번 엑스선 촬영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다시 사진을 찍어보니 보이지 않던 손톱만한 크기의 흰 반점이 사진에 나타났습니다. 교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저의 가족에게 “희망은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 봅시다.”라며 30분 사이로 계속 사진을 찍어 마침내 깨끗해진 저의 폐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득 찼던 그 많은 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지요. 주님께서 당신이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자비였습니다. 끝까지 지켜주시는 당신의 자비 사건이 또 있습니다.
저의 담당 인턴이 ‘비소’라는 극약을 제게 투약할 때 실수로 주사 호스를 다 열어놓고 가는 바람에 2시간에서 2시간 30분 걸리는 그 독한 주사약이 5분 만에 제 몸속에 다 들어왔는데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놀란 병원 측에서 오히려 더 난리를 쳤지요. 알고 보니 그날이 바로 캄보디아 의료봉사 갔던 포교베네딕도수녀회 수녀님이 저를 위해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과 은혜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살아온 그 모든 날들의 발자국자국마다 주님의 성심에 못질하면서 살아온 대죄인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저는 불쌍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저의 잘못과 허물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깊은 회개의 은총과 더불어 많은 축복을 또한 저에게 부어주시니 어찌 이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2006년 4월 부활을 며칠 앞두고 공직에서 은퇴하여 병간호를 해오던 저의 남편을 주님께서는 대구의 모회사 대표이사로 앉혀주시어 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깨끗이 정리해주셨지요. 또 2007년 12월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시어 ‘가타리나 드보레’라는 세례명을 가진 며느리를 맞게 해주셨고, 2008년 3월에는 막내딸 소피아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 입회하는 영광을 주셨으며, 2009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에는 결혼 10년 만에 그렇게 애태우던 저의 둘째 사위가 ‘요셉’으로 새로 태어나 온 집안이 모두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12월 17일 미국의 큰딸 로사가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과 은혜입니다.
저는 정말 이 많은 축복을 받기에 부당한 죄인이건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저를 회복시켜주시니 어찌 이 모든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10명의 나환자를 치유시킨 주님(루카복음 17장 11-19절)께 되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한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9명은 치유만 받았지만, 돌아와 감사와 찬양을 드린 이 한 사람은 더불어 구원도 주님께서 약속해주셨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귀의 근성이 감사할 줄 모른다지요. 깊이 새겨볼 말씀입니다.
20년 가까이 절에 다니다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마지막 죽음에 임했을 때 스님도, 목사님도 마다않고 오직 신부님만 찾으시어 대세를 받고는 모기만한 소리로 성모마리아를 세 번 부르며 천국가신 아가다 이모. 이 기이한 현상을 본 저의 외할머니는 절을 짓고 40년 넘게 불자로 사시며 스님 옷을 다 지어서 입히실 정도로 불심이 컸음에도 마침내 세례를 받고 ‘세실리아’로 다시 태어나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다 떠나셨는지, 3년 전 당신 죽는 날까지 성모님을 통하여 알아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 사건 등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다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한 명도 잃지 않으시고 기억하시어 구원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 감사 또 감사, 찬미와 영광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신 신부님들과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포교베네딕도수녀회, 예수성심시녀회의 모든 수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서울까지 오셔서 기도해주시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두 분 수녀님과 대명성당, 수성성당의 모든 형제자매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모든 분들의 정성을 기억하시어 꼭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죽는 순간까지 주님 함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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