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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들 - 2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 속으로


류 말가리다|예수성심시녀회 대구관구 수녀, 겨자씨 성서모임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사순시기에 무슨 결심과 지향을 둘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관상을 더 열심히 아니면 TV 안 보기 또는 외식 안 하기 등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사순시기가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 갈 것이니, 내 나이테만큼 더 넓은 마음과 이해심 그리고 큰 가슴으로 순수한 지향을 갖고 살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매일매일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난데없이 날아오는 무수한 공(나를 향한 적대감, 시기, 질투, 비웃음, 험담….)들을 받아 내느라 지쳐 떨어지지 말자. “탁!” 때릴 때 물론 아프지만, 내가 받아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자. 그래서 내 안에서 욕심을 비워내고 타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져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깊은 바닷속처럼 주님만이 주시는 잔잔한 평화를 잃고 싶지 않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파스카의 삶에 대한 글을 써보라는 청탁을 받고, 가장 강렬하게 내 삶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속에서 치유 받은 경험이 되살아납니다. 대구-서울로 수년 간을 좀더 깊이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냐시오 영신수련 지도자 코스를 공부하면서 나이 50이 넘은 수도자가 수천 번도 더 용서했던, 아주 어릴 적 상처가 되살아나 지도교수 신부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통곡을 하다가 복음관상 중에 십자가 신비 속에서 치유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불가항력의 숙명적 상처인 15세 때에 엄마를 잃고 울부짖던 소녀에게 설상가상으로 엄마처럼 의지하려고 찾아간 새언니의 이해타산과 그릇된 지향 때문에, 참기 힘든 너무나도 슬픈 누명을 쓰고 엄마 산소에서 울다가 울다가 기절한 그 밤의 기억. 그 후로 스스로 가족을 떠나서 미혼인 언니와 둘이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던 그 때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로부터 40년이 넘어서야 주님 안에서 비로소 파스카 한 것입니다. 50이 넘은 수도자는 천 번도 더 용서했지만, 15세 어린 소녀는 용서하지 못하다가 비로소 관상기도 안에서 치유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은 채 말할 수 있을 만큼 말이지요.

 

주님의 부드러운 살결이 사정없이 터져 나가고
참혹해 참혹해 눈 둘 곳 없음이여
매질한 상처위에 횡목 토막!
옴짝달싹 할 기력도 남지 않아 죽은 듯 쓰러지신 핍진은
속 상처가 너무 커서임을
나의 작은 역사로 조금은 알았습니다.
잔인하여라 발가벗기움이여,
응어리진 상처가 찢어져나간 쓰라림이시여.

50평생을 서러워 너무 아파
아무도 못 보게 싸매고 싸맨 상처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은 뒤 매운 쓰라림을
그 크신 상처가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세상의 온갖 상처들이여,
나를 보라, 내게 오라 하시면서
어둡고 어둡고 다시 어두움뿐인
이 적막, 공허, 고독 속에 매달리신 슬픈 님이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장대비 되어 쏟아 내린
흠뻑 젖은 십자가 끌어안고
정수리에서 온 가슴으로 스며 흐르는 성혈,
죄인은 진실의 피를 쏟으며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던 속마음의 서러움이,
다 용서 못한 응어리진 멍울이 열등감이 녹아내립니다.
평생을 님 찾아 마른 논바닥처럼 목 타던 갈증이
이 가슴 속으로 샘이 되어 고여옵니다.

 

이냐시오 영신수련 중에 노트에 메모해 놓았던 것을 옮겨 보았습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맞으면서 참으로 내 안에서 진정한 파스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거룩하고 장엄한 파스카 전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나의 상처 받은 情(정)-恨(한), 좌절된 희망, 시련, 유혹, 갈등의 십자가를 예수님의 십자가와 만나게 할 때 아무런 한 없이, 용서하신 주님처럼 썩힘이 아니라 삭힘의 영성으로 생명과 나눔의 부활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내 존재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恨(한)을 풀고 정을 나누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한을 풀어주시고, 나쁜 기억을 치유해 주시며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성령)으로 채워 주시도록, 나의 일상에서 매일매일 비워내어 참된 파스카를 체험하고 싶습니다.